안톤 체호프, '6호실'
‘6호실’은 안톤 체호프(1860~1904)가 1892년도 발표한 작품이다. 체호프는 1890년 러시아 죄인들의 유형지였던 사할린에 삼 개월 간 역학 조사를 위해 본토를 떠난다. 그 여행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정치, 사회 문제와는 거리를 둔 집필 활동을 해왔다면 1890년 이후로는 원숙한 사상인으로서 진지한 질문을 시도한다. 이 작품을 읽은 당대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세상이 6호실임을 깨닫는다. 레닌 역시 ‘마치 나 자신이 6호실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다.
시립 자선 병원 별관 6호실에 다섯 명이 입원해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구속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환자들은 정신병자로 진단받았고 병원 당국은 그들을 수감했다. 별관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로 둘러싸인 채 넝마처럼 버려져 있다. 환자들은 의사를 포함한 세상으로부터 잊힌 거나 다름없다. 문밖에는 강철 주먹을 가진 감시인 니키타가 이들을 감시한다. 니키타는 질서를 사랑한다. 6호실은 이 남자의 손에 순하게 길들여져 있다.
환자들에게는 각각의 사연이 있지만 비참하고 가난하다는 건 같다. 이중 그로모프는 전직 현청 서기였다. 귀족 출신에 괜찮은 직장인이었던 남자가 어떻게 극빈자 병동까지 오게 된 걸까. 그는 예민한 사람이다. 멀쩡한 사람도 범죄에 연루되거나 누군가에게 모함을 받을 수 있다. 재판에서 오심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파산이나 감옥살이도 가능하다. 이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추적 망상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6호실에 감금된다. 그러나 명석하고 이지적이며 남을 배려하는 친절한 마음씨로 병실 동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어느 날 뜻밖에도 6호실에 의사가 방문한다. 라긴은 이 병원 원장으로 20여 년을 근무했다. 젊은 시절에는 성직자를 꿈꿨을 정도로 정교도로서 신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직업, 학문, 종교 어디서든 소명 의식을 발견하지 못한다. 6호실이 있는 별관은커녕 일반 병동에도 별 관심이 없다. 처음에는 역할을 제대로 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외진 소도시 자선 병원에 재정 상황이 좋을 리 없다. 그나마 중간 관료, 병원 행정 직원들이 부패 사슬로 묶여 있어 운신의 폭마저 크지 않다. 라긴은 앞으로 무심하게 지내리라 작정한다. ‘그래서 어쨌다고?’, ‘달라지는 게 뭐지?’ 이렇게 스스로 자문하고는 환자를 살려봐야 삶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라 여긴다. 그리고는 ‘이 부정은 내가 아니라 시대 탓이야’라며 변명거리로 삼는다. 주변 인물들도 사귈 만한 이들이 드물다. 시시한 일에나 관심을 보이는 반지성적 인물들만 우글우글하다. 라긴이 몰두하는 건 오로지 책이다. 그 안에서라야 하찮고 비루한 세상을 벗어나 진짜 삶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정신병동에서 대화를 나눠 본 그로모프는 달랐다. 대화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그로모프에게서 디오게네스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스토아 철학자를 찾으려 한다. 자유롭고 심원한 사색을 위해서는 쇠창살 안이 오히려 축복이다. 외부가 무슨 영향을 준다는 말인가? 번잡한 직업이나 변변찮은 사람들로 둘러싸이기보다는 혼자만의 의미 있는 고독을 즐기는 게 낫다. 게다가 감옥과 정신병원이 존재해야 한다면 누구든 갇혀있어야 한다. 범죄자든, 정신병자든 모든 것이 무의미한 우연에 달려 있으니.
반면 그로모프는 공포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삶에 대한 욕구가 충만한 인물이다. '고통에는 비명과 눈물로, 비열함에는 분노로, 추악함에는 혐오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 그로모프의 생각이다. 그는 병실에서의 삶을 즐기라는 라긴을 향해 ‘이 병실과 따뜻하고 쾌적한 서재 사이에 차이가 없다니. 참 편리한 철학이올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양심은 깨끗하고, 자신이 현자라고 느껴지니……아니죠, 나리, 그런 건 철학도 사상도 혜안도 아니에요. 그냥 게으름병, 속임수, 나른한 혼수상태지.’라고 항의한다. 그로모프는 의사가 진짜 인생을 보지 않았고 현실에 대해 단지 이론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6호실을 자주 드나들면서 라긴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진다. 곧이어 병원장으로서도 강제 면직을 당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낀다. 친구와 동료들은 가난할 뿐만 아니라 치료까지 거부하는 라긴을 6호실에 가두고 만다. 이제 라긴은 그로모프와 동료로서 한 방에 거주한다. 그리고 사유의 서재여야 할 이 병동이 죽음으로 가는 사형대임을 깨닫는다. 달이든, 감옥이든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라긴의 생각은 오류였음이 분명하다. 그의 영혼이 무너진다. 탈출 소동을 일으켜 니카타에게 실컷 얻어맞은 라긴은 이 유령 같은 환자들이 오랜 세월 폭행에 시달려 왔음을 깨닫는다. 같은 병실의 비곗덩어리 식충,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린 환자들이 라긴의 미래일 것이다. 뇌졸중 발작으로 사망에 즈음해서도 그는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
독서와 철학은 안락한 환경이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 인지도 모른다. 라긴은 사유를 위해서라면 감옥도 상관없다고 보았다. 아니, 오히려 쇠창살 안이 사유에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현실과 이상은 외따로 떨어져 있던가? 아닌 것 같다. 이 중편은 생생한 삶 안에 있을 때라야 신과 인간, 혹은 실존과 본질을 사유할 수 있다고 웅변한다.
니힐리스트 체호프는 부조리한 외부 환경이 견고하다는 걸 점점 더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지도 못한 채 삶을 이어가는 이가 많다. 그러나 체호프가 주목하는 건 6호실 병자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라긴이나 그의 상류층 동료들에게서 더 큰 문제를 발견한다. 타인의 고통을 추상이나 관념으로 본다는 것, 바로 그게 병의 진짜 징후이다. 시각의 전환, 리얼리스트로의 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