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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림 Jan 19. 2022

그때도 우리가 살았네

카르미나 부라나,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는 ‘보이렌의 노래 Songs of Beuern’라는 뜻이다. 이 노래집은 라틴어와 독일어가 섞여 쓰였는데 독일 남부, 보이렌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11~12세기에 불리던 세속 노래를 수도원에서 1230년경 수집해 필사/보관해온 것이다. 9세기에서 11세기에는 다성음악이 등장한 시기다. 인간의 다양한 목소리,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근엄해 보이는 수도원 도서관 한 귀퉁이에 풍자와 관능, 헛된 욕망에 몸부림치는 인간 세상을 그린 시가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신기하기만 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0)에 나오는 14세기의 그 베네딕트 수도원도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밀실 안에 ‘시학 2권’을 포함한 각종 금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한다. 문해력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던 수도사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아카이브에 저장하는 데에 모종의 권리 내지 의무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이곳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성실함 같은 것 말이다. ‘멋진 신세계’나 ‘1984년’과 같은 SF물의 지배자들도 정보 독점을 통해 전체주의 사회를 유지시킨다. 물론 자기들은 언제든 상층 지식에 닿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종교 시대든, 이데올로기 시대든 인간의 감정이 꿈틀대며 뛰쳐나오는 걸 막지  못한다.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소녀’를 보라. 그렇게 험난한 문화혁명의 와중에도 연애, 낙태, 가출은 여전하다. 노인은 음란과 관능이 뒤섞인 옛 민요를 부르고 마오이즘에 충실한 촌장마저 영화 이야기에 얼이 빠진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1932)도 비슷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음란하고 관능적인 레스코프의 악녀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그녀가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하는가? 그렇지 않다. 작곡가는 감정은 억압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카르미나 부라나의 시들은 단지 문학 작품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흔하게 부르던 노래를 모은 것이다. 누가 부르던 노래일까. 이런 노래를 짓고 부르던 이들이 세상의 주류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어느 시대이든 아웃 사이더들은 있는 법이니 중세에도 온갖 종류의 떠돌이가 많았을 터이다. 음악이나 시와 관련 있는 이들은 지역에 따라 트루바드르, 트루베르, 민네징어, 마아이스터징어 등으로 불렸다. 이런 음유시인들에는 여러 계층이 혼재되어 있었다. 수도사, 학생, 기사, 하층 방랑자들이 뒤섞인 그룹이었다. 이 중에서도 ‘카르미나 부라나’와 관계있는 이들은 과거 수도사와 학생이었던 지식인 그룹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몸담았던 세계의 내부를 속속들이 안다. 그러므로 더 노골적으로 세상을 비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랫말들은 매우 세속적이다.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다수가 사랑, 음주, 가무, 운명 등을 주제로 한다. 교회의 부패, 성직자의 추문 심지어 강간, 성행위, 도박에 대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하다. 전체 시는 254개이다. 1936년 카를 오르프는 이 시들을 추려 25악장의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칸타타를 완성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 독창이 어우러진 대편성이다. 여기에 반복 리듬, 걸출한 가사의 내용이 덧붙여져서 작품은 장엄하고도 의미심장하다. 그가 고른 주제들 역시 오리지널 노래집의 주요 주제를 아우른다. 행운과 부의 여신의 변덕, 삶의 덧없음, 다시 돌아온 봄, 술, 도박, 타락의 즐거움과 위험에 대한 것들이다.

1장과 25장은 Fortuna Imperatrix Mundi(Fortune, Empress of the World), 행운의 여신이 돌리는 수레바퀴에 매달려 사는 인생을 노래한다. 나는 다스릴 것이다/나는 다스린다/나는 다스렸다/나는 (현재) 왕국이 없다’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권력자조차 행운의 여신이 바퀴를 돌리는 것도 모른 채 피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피조물의 운명을 지닌다. 여신은 함부로 물레를 돌린다. 바퀴에는 규칙도 원칙도 없다. 그 변덕대로 인간의 운명은 마구 바뀐다. 인간은 이유 없이 고통받으며 비련의 주인공이 다.

12장의 ‘한 때 나는 호수를 헤엄쳤다’에 관심이 간다. 파곳이 연주하대로 흘러가보니 주인공은 거위아닌가. 살아서는 아름다운 호수를 헤엄쳐 다녔다. 이제는 잡혀서 털도 뽑힌 채 요리를 위해 시커멓게 태워졌다. 그때 누군가의 이빨이 다가온다. 살아있던 때가 좋았지. 죽음은 모든 걸 가져간다. 심연에의 허무와 공포가 몰려오는 가사이다. 중세인들은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여겼다.

중세는 암흑 시대라고 불린다. 종교가 세상을 지배한 시절이다. 제왕들마저 종교에 무릎을 꿇었다. 종교에 도전하는 기미만 보여도 함부로 생명을 빼앗았다. 모든 것이 신의 논리에 지배당했다. 인간은 그 거대한 힘 앞에서 하찮은 벌레 같은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공식 역사 외의 진실은 따로 존재한다. 살짝 드러난 빙하의 아랫부분이야말로 엄청난 규모이듯 진실은 모습을 감춘 채 수백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4세기에는 '아르스 노바'라는 악 용어도 출현한다. 세속화가 막을 수 없이 진행된다는 증거다. 삼위일체의 3박자와 불경한 2,4박자가 섞인다. '포벨의 이야기'(1316)  이 시기의 악 필사본이다. 포벨Fauvel이란 당나귀를 뜻하는데 중세 프랑스어아첨, 탐욕, 비열함, 변덕, 질투, 비겁의 머릿글자를 이어붙인 것이다. 이 시절 당나귀는 사악함, 음란함을 연상시키는 동물이었다. 그 정도로 모음곡들은 성스러움이나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 무절제함이나 강렬한 리듬감을 드러낸다. 무상, 쾌락의 표현이다.

요한 하위징아(1872~1945)가 쓴 ‘중세의 가을’(1919)흥미있는 책이.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하듯이 중세가 저물어가는 시기인 14, 15세기를 다룬다. 카르미나 부라나가 불린 시간으로부터 100여 년 이상이 지났다. 사람들은 더욱 대담해진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히 부르고뉴 인들의 시대를 뛰어넘는 활발함에 놀란다. 하위징아가 네덜란드인이므로 고향 부근 부르고뉴 공국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중세의 생활이 얼마나 다채롭고 또 치열했는지를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런 잘 감동받는 마음, 눈물과 참회에의 미감성, 예민한 감수성 등에 우리 자신을 대입해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세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고 선명한 감정을 발산했다. 눈물/분노/잔인함/정의감 등이 가감 없이 표출해 피와 장미 향 를 섞었다. 현대인은 감정의 내면화 및 절제를 문명의 결과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중세인들은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순수 야만인들이다.

‘중세의 가을’에는 기존의 생각대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지금으로 봐서도 어이없는 에피소드들이다.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립(1396~1467)은 사신을 맞아 목욕탕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목욕탕은 ‘비너스의 부름-남녀 간의 에로스에 부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대담공(1433~1477)이 소유한 정원에는 여러 기계 장치들이 있었다. 어떤 품목에는 ‘여자들이 그 밑을 지나가면 흥분하여 사타구니가 젖게 되는 기계’라는 설명이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장 푸케가 그린 ‘믈룅의 성모 마리아’라는 그림을 보자. 마리아의 모델은 프랑스 왕의 정부이다. ‘둥그렇고 깨끗한 면도한 이마, 넓게 옷깃을 벌려 둥글게 드러나 유방, 높고 좁은 허리, 기이하면서도 읽어내기 어려운 얼굴 표정,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뻣뻣한 붉은 천사와 푸른 천사들은 그림에 퇴폐적 무신앙의 분위기를 안겨준다.' 하위징아는 이 그림에서 불건전한 분위기만 느꼈음이 틀림없다.





  <장 푸케, '믈룅의 성모 마리아>(1450~1455)


무명 화가가 1430년대에 그린 ‘리스벳 반 두벤보르데’도 재미있다. 얼핏 인물은 엄숙하게 보인다. 성화로 착각할 정도. 그러나 그녀가 들고 있는 깃발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소망하는 것이 지겹다. 자기 마음을 활짝 열어 보여주는 남자가 어디 없을까?' 현대 여성보다도 대담하구나. 어떤 여자가 저런 깃발을 펄럭거리며 애인을 구하는 광고를 할 수 있을까.






  <작가미상 ‘리스벳 반 두벤보르데'>(1430년대)






사람들은 욕설이나 말장난, 시가 등을 빌어 신성 모독에 가세하기도 했다. ‘성 안토니우스가 매음굴을 불태우기를’, ‘성 안토니우스가 저 말을 불태워 버리기를’하며 성인의 이름을 빌린 부적이나 마찬가지다. ‘성 요한은 비참한 거지를 죽게 하는 기적을 베풀며 성 피아크리우스는 농포로 고생시킨다. 성 다미아누스는 오줌이 잘 안 나오게 하고 성 안토니우스는 염증을 안겨준다. 성 피우스는 불구로 만들고 사지를 마비시킨다.’는 노래도 불렸다. 남을 증오하는 저주, 부적, 주문 등이 유행했다는 건 어두운 인간 본능이 여전했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아버지 요셉을 비아냥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많았다. 어떤 작가들은 요셉을 평생 일만 하다간 한심한 남편, '이 세상에서 아무런 낙이 없는' 남자 '바보'로 비하했다. 아내와 아들의 빛에 가린 현실 남자와 비교한 것이다.

15세기에는 알몸 공연도 성행했다. 비너스, 주노, 미네르바가 전라로 출연하는 ‘파리스의 심판’은 특히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벌거벗은 농사의 여신 케레스, 옷이 벗긴 채 쇠사슬에 묶인 안드로메다 등도 환영받았다.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빙자한 스트립쇼 아니었을까.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에 보면 중세의 가족들은 목욕을 하러 갈 때 아예 처음부터 벌거벗고 길거리를 걸어간다. 참 편했겠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순수 시절이여.


교회나 순례도 사회생활, 쾌락, 연애의 장소가 되곤 했다. 스탕달의 '적과 흑‘이나 '파르마의 수도원‘ 교회가 남녀의 밀회 장소였음을 암시한다. 경건한 장소 한 켠에서는 창녀들이 호객 행위를 했다. 부도덕한 그림들도 판매되었다. 순례 여행도 순수하지만은 않아서 뚜쟁이들이 끼어들어 청춘남녀를 유혹했다. 심지어 순례를 다니는 이들은 성자가 되지 못한다고 경고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15세기쯤 되면 ‘가장 성스러운 축일들, 심지어 크리스마스 이브도 카드 게임, 욕설, 신성 모독 등 방탕 속에서 지나갔다. 만약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지적하면 그들은 귀족들과 고위직, 하위직 성직자들의 사례를 지적했다. 성직자들은 그런 행동을 해도 아무 일 없는데 왜 우리들만 뭐라고 하느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카르미나 부라나의 노래들이나 ‘중세의 가을’을 읽다 보니 중세가 그리 낯설지 않다. 요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인습과 종교라는 거대한 갑옷 때문에 그들의 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사람이 살았다. 한시도 쉬지 않았다. 본능에 충실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은 태양을 찬미하고 아름다운 사계절을 노래했다. 그곳에서 남녀는 사랑했다. 신의 지배를 받지 않는 어느 쾌락의 동산. 그 동산이 점점 솟구친다. 머지않아 중세가 끝날 것이다. 인간 승리의 계절. 르네상스를 맞을 준비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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