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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림 Feb 25. 2022

그녀의 부부탐구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조지 엘리엇George Eliot(1819~1880)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작가다. 다양한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출연해 개인적, 사회적 이상을 실현시키려 한 시대였다. 세상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가져다준 혜택에서 여자들은 오래도록 제외되었다. 미래를 꿈꾸었지만 몸은 과거에 머물러야 했다. 사회나 가정에서는 남성에게 금욕과 절제를, 여자에게는 순종과 순결을 강제하고 있었다. 생각 따로, 몸 따로 시대였다. 사회는 기존의 관습이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부장적인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본명 메리 앤 에반스Mary Ann Evans. 이 작가는 19세기 여성으로서 혁명적인 삶을 살았다. 조지, 남자 이름이다. 여성 작가들에게 따라다니던 피상적 관념들을 거부하기 위한 필명이다. 그녀는 ‘조지’라면 가벼운 로맨스물이 아닌 진지한 주제에 집중하는 작가로 간주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작가는 이미 번역가나 평론가로서 유명 인사였다. 필명 안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Samuel Laurence,  Portrait of George Eliot, 1860>





조지 엘리엇은 시대가 요구한 고정된 성역할을 거부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외모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딸 교육에 열성적으로 투자했다. 덕분에 그녀는 일찌감치 자유주의와 무신론에 깊숙이 사로잡힌다.


작가는 철학자 조지 루이스(1817~1878)와 동거하는 모험도 감행한다. 조지 루이스 역시 파격적인 삶을 살았는데 이미 네 명의 자식이 있는 여인과 비-일부일처 결혼 관계에서 세 명의 아이를 더 두었다. 조지 엘리엇+조지 루이스, 두 사람은 스캔들의 중심이었다. 그녀는 이 애인이 사망한 후, 환갑의 나이에 20세 연하 남성과 결혼했다. 조지 엘리엇은 사망한 후에도 신앙 거부와 혼외관계 등으로 웨스터민스터 작가 구역에 잠들지 못했다. 여러모로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의 인물이다.


이런 작가가 그린 부부라면 현대적이지 않을까. 인물들은 좀 더 자유롭게 사고하지 않았을까. 작가 본인이 추문을 무릅쓰고 세상의 틀을 거부했으니 그럴 법하다. 그녀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부부관계를 탐험해 본다.


 ‘미들마치’(1871~1872)에는 미들마치여러 쌍의 부부가 출연한다. 바람직한 결혼의 예를 찾아보라는 종합 선물세트와 같다. 남편이 추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가 있나 하면, 아내를 어린애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남편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로 부족한 곳을 살피고 도와 행복을 누리는 부부도 있다.


결혼 생활도 인간관계다. 쉬운 듯하지만 어렵고, 어려운 일이 지나가면 또 언제 그런 고난이 있었나 싶게 술술 풀리기도 한다. 부부는 성과 법으로 엮인 물리적 결합체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두 사람이었지만 긴 시간이 만드는 화학 반응이 새로운 인격체를 만들어낸다. 오래도록 부부로 산 사람들에게는 무심한 편안함이 있다. 두 사람이되, 한 사람 같은 일심동체 상태가 된다. 그러니 굳이 말을 안 해도 안다. 너와 나는 자웅 합체, 헤르마프로디토스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다들 성공하는 건 아니다. 남들은 다른 부부의 내밀한 속사정을 모른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 세 쌍을 골라 본다. 이들은 세속 부부들로서 문제가 많다. 잘 돼서 영혼의 반려자가 되기도 하고 잔인한 저주로 관계를 마감하기도 한다.


도로시아와 캐소본은 부부로 어울리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각자 더 행복했을 것이다. 도로시아는 특유의 사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애정이라고는 없는 고리타분한 남성과 결혼한다. 무려 27세 연상이다. 그녀는 학자 겸 성직자, 캐소번의 인격과 학문을 흠모한다. 남편이라기보다는 스승을 얻고 싶다. 그녀는 18세,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한참 어리다. 물론 현재의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다. 당시로서는 일정 나이가 넘으면 프러포즈 받을 찬스사라졌으니까. 캐소본은 편협한 데다가 학문적 소양도 깊지 못하다. 그러나 이 남자는 실상을 들키고 싶지 않다. 심지어 똑똑한 아내가 자기를 추월할까 겁이 나 연구물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의 권위적인 면, 보잘것없는 질투심, 이기심에 놀란다. 캐소본은 죽어서까지 아내를 소유하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젊은 아내가 재혼할까 두려워 유산은 아내가 독신으로 살아야만 상속된다고 못 박았다.


로저먼드와 리드게이트 커플을 보자. 리드게이트는 미남에다 전도 유망한 의사로 집안 역시 명문이다. 빠지는 게 없어 보인다. 그건 로저먼드도 마찬가지여서 미들마치 시장의 따님이자 이 동네 제일가는 미녀다. 당연히 그녀는 사교계의 스타로 군림한다. 둘은 어쩌면 최고의 선남선녀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다는 점. 로저먼드는 이 남자와 결혼하연 신분이 고속 상승할 것으로 생각한다. 본인은 성공한 남자의 트로피로 대우받아야 한다. 시골 의사의 아내로 근검절약하는 생활은 상상하지 않는다. 남편이라면 아내의 아름다움에 늘 감동해야 하고 그녀의 사치욕도 충족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로저먼드 눈에 리드게이트는 낙제다. 게다가 남편은 직업적 소명의식이 투철하다. 아내보다는 연구실이 소중하다. 이런 결합도 파국에 이르기 쉽다.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너무도 다른 가치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메리와 프레드 풍요로운 공동체를 이룬다. 프레드는 게으른데다 도박벽, 낭비벽도 있다. 그에 비해 메리는 가난한 이상주의자 집안의 맏딸이다. 지참금도 없고 외모도 멋지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 남편을 건전한 영혼으로 이끌 줄 안다. 조지 엘리엇은 인간미가 살아있는 농촌이나 전원, 소박하지만 자긍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메리와 프레드는 농부로 평생을 보낼 것이다. 비록 도시와 돈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가치 있는 삶에 헌신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서로를 존중하며 닮아가는 모습에 감동한다. , 그렇지만 현실감 없는 커플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종교 공동체+농촌 유토피아+공상적 사회주의작가 자신만  이니라 19세기말 영국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편리한 결론이다.


여성에게 유산상속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150년 전을 상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으로 하여금 주체적 삶을 사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였다.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익숙하게 회자되던 삼종지도가 유럽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부모, 남편, 자식에 기대야 평생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들에게 결혼 실패는 인생에서의 패배나 마찬가지다. 어린 소녀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미성숙 상태로 혼인했는데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사회는 해결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회문화적으로 뚜렷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존재했다. 위의 세 쌍의 인물들은 시대에 어울리도록 구현된 특별한 캐릭터를 지녔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부부들이다. 세상은 바뀌었어도 면면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캐소번같이 위압적이거나 로저먼드처럼 허영심에 찌든 배우자는 위험하다. 대신 메리처럼 역경에 굴하지 않는 사람은 변함없이 든든하다.


예나 지금이나 부부는 잘 살고 싶어 한다. 이상도 추구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출세도 하면 좋다. 그래서 쉽지 않다. 다 만족시키기에는 인생이 짧으니까. '잘 산다'의 방점을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그런대로 행복할 것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조지 엘리엇은 남다른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린 인물들은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작가는 다만 남녀가 평등하게 사랑하는 원만한 가정과 사회를 꿈 뀠을 따름이다. 부부 평등은 아직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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