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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림 Sep 18. 2022

폴란드 이야기

안제이 바이다, 약속의 땅

안제이 바이다의 ‘약속의 땅’(1975)은 19세기 말 폴란드 우치가 배경이다. 우치라는 도시는 낯선데 폴란드에서는 바르샤바, 크라쿠프에 뒤를 잇는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세기에는 당대 규모로는 매우 번성한 도시였다고 한다. 섬유산업이 급성장해 폴란드의 ‘맨체스터’라고도 불렸다.


‘약속의 땅’은 러닝 타임이 세 시간이나 되는 대작이다. 19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레이몬트의 동명의 소설, ‘약속의 땅’(1899)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19세 말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니만큼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차가운 시선드러난다. 극적 세부 사항 또한 매우 사실적이고 자연주의적이다.


폴란드는 최근 한국으로부터 경공격기, 전차, 자주포 등을 구입해 간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후로 폴란드는 자국 방어 계획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안 커쇼의 20세기 유럽사를 읽어보면 폴란드 관련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행위자,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 짓밟히는 자로서의 처참한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독일과, 러시아라는 패권국 사이에 위치한 죄로  물리고 뜯긴 세월을 더이상은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18세기 말에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삼국에 의해 세 차례 나라가 분할되어 1795년에는 세계 지도에서 사라진. 우치는 이 나라의 운명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도시는 1793년 2차 분할 시기 프로이센의 영토로 편입된다. 그러다가 1816년에는 러시아령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 시점으로는 아직 러시아 영토인 셈이다.


이 무렵 도시는 이민이 폭증하면서 독일인, 유대인 등의 유입이 빈번해진다. 풍부한 노동력이 섬유 산업을 부흥시키면서 도시 규모는 확장 일로다. 어제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늘은 새로운 욕망으로 들끓는. 과거에 머무는 이에게는 공포스럽지만 유능한 이에게는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약속의 땅’이다.


젊은 세 남자가 있다. 카롤은 폴란드 몰락 귀족의 자제다, 막스는 독일인으로 공장주를 아버지로 두었으며 모리츠는 유대인, 머리가 뛰어나다. 이 세 명이 뭉쳤다. 세상 무섭지 않은 친구들은 자기들의 공장을 세우기로 한다. 매일같이 누군가는 도산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시작한다. 이곳에는 나라도, 민족도 없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카롤의 아버지처럼 과거 귀족들의 우아한 전원생활만 찬미하다가는 파산하기 딱 맞다. 막스의 부친 또한 전통 규범을 중시하는 구시대 부르주아로 새 시대의 낙오자다. 두 남자의 브레인, 자금 담당은 모리츠가 맡았다. 그는 유대인으로 발 빠르고 수완 좋고 거짓말도 밥 먹듯 한다. 협잡꾼 대마왕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몰인정의 세월 속에서 민중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다.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라 윤리의식이 좀 있는 이들이라면 이런 땅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공장관리자들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산재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고리대금업자들은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들여 제 배를 채울 궁리만 한다. 지금 당장 굶어서 죽는다고 애원해도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큰소리친다. 공장주들은 예쁘장한 공들만 보면 쉽게 정부로 삼는다. 그녀들의 부모에게 몇 푼 집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부유층은 애인이나 친구, 동료를 모아 파티를 연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환락이 펼쳐진다. 예전 유럽 부유층이 노는 걸 보면 파졸리니의 하드 고어 ‘살로 소돔의 120일’(1975)이 우화만은 아니었겠다 생각이 든다.


공장주라고 해서 다들 순행하는 건 아니다. 새 기법, 새 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 국제 정보를 빨리 얻지 못하는 자는 아웃이다. 미리 보험에 든 사람들은 자기 건물에 불을 지른다. 공장들이 불타오르고 주인들은 보험회사에 청구한다. 차마 그럴 정도로 부도덕하지 못하다면 부도로 자살한다.


레이몬트는 세 친구를 폴란드 귀족 잔당과 독일인 부르주아의 후예, 유대인으로 내세웠다. 당시 우치를 좌지우지했던 세 그룹의 대표자일 것이다. 그들은 무주공산의 신기루를 사로잡기 위해 맹렬하게 달려간다. 구가 충족되면 더 큰 갈망이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단번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어렵사리 만든 공장에 불이 난 것이다. 카롤과의 불륜에 탐닉한 유부녀의 남편이 사주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물러날 삼인조가 아니다. 카롤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부잣집 딸과 정략결혼도 불사한다. 장인이 사위를 위해 아낌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사업에 성공하고 친구들는 우치의 거물이 된다.


그러나 19세기 말에는 사회주의도 급부상하고 있었다. 노동자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동 운동이 조직화되고 산업 현장에서는 파업이시위가 빈번하다. 영화 말미에 카롤은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를 결정한다. 그와 한패경찰들이 총을 난사하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죽어간다.  원한은 대를 이어서 갚아진다.   


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관객은 폴란드의 그 후 사정을 알고 있으므로 세 친구들의 운명이 밝지 않을 것임을 안다. 1905년에 폴란드는 경제가 침체되면서 대규모 봉기가 잦아지고 러시아 군대는 폴란드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한다. 그래서 1914년 독일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에  독일군을 환영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해피엔드는 아니다. 1차 대전 중 독일/오스트리아 등의 중앙 동맹국과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협상국은 폴란드를 무수히 밟고 지나간다. 마을이 사라지고 삼림은 파괴되었다. 농가들은 약탈당해 빈털터리가 되었다. 가축들은 모조리 가져가 버리고 남자들은 강제 이송되었다. 폴란드는 1차대전  후인 1918년 나라가 사라진지 무려 123년만에야 다시 소생한다.     


폴란드가 가해자가 된 적도 있다. 2차 대전의 전초전을 알렸던 1938년 뮌헨 회담에서 나온 결과의 부산물로 체코의 영토 테셴을 서둘러 병합한 것이다. 폴란드는 1934년 독일과 10년 기한의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니 수혜자 혜택을 오래도록 보리라 기대했으리라. 너무나 짧은 밀월이었음이 곧 드러난다.


독일은 자유시 단치히(오늘날의 폴란드 그단스크)를 돌려받기를 원했고 폴란드 회랑에 대한  운송료도 요구하지만 폴란드는 제안을 거부한다. 독소 불가침조약이라는 야비한 거래가 만들어지는 것을 알 리 없었다. 독일로서는 동부전선을 안전하게 봉인한 셈이다.


2차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과의 합의에 의해 소련도 9월 중순 폴란드 동부를 점령한다. 서쪽은 독일화, 동쪽은 소련화되었다. 국가 폴란드는 20여년 만에 또 소멸되었다. 소련 점령 동쪽 지역 폴란드인들은 체포, 총살, 강제수용과 이송 등 잔혹한 폭력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서쪽 독일인들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약과일 테다. 야만의 시절이다.


2차대전 사망자는 유럽에서만 4000만 명 이상이다. 소련 2500만 명, 독일 700만 명에 이어 폴란드의 희생자가 600만 명을 헤아린다. 강대국 사이에 낀 이 나라 사람들의 고통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독일인들은 폴란드인들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히틀러는 폴란드 사람을 '시람이라기보다는 짐승'으로 지칭했다. 그러니 최하층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다. 전시 최초의 게토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에 있었다. 바르샤바 게토에서는 13000명이 봉기 중 사망했고 5만 명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우치는 개전하고 불과 8일만에 독일에 함락된다. 심지어 도시 이름마저 리츠만슈타트로 바뀌는데 이곳은 유대인 게토로 악명이 높았다. 만일 이때까지 모리츠가 살아있었다면 그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고도 남는다.  


동유럽이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는 유대인 비중이 높았다. 사회적 소요를 두려워한 지배층은 인종차별이나 영토를 이용한 민족 감정을 부추기곤 했다. 유대인은 여러 분야에서 공격의 대상이기 쉬웠다. 20세기 초반 동유럽인들은 유대인이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무산계급 운동을 주도한다고 보았다. 편협한 우생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학살, 방화 등의 포그롬을 저지른다. 유대인은 백색테러에도, 적색테러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희생양이었다. 2차 대전  우치 거주 유대인은 23만 명이었는데 그중 고작 만여 명만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폴란드 유대인 학살의 실상을 알 수 있다.  


폴란드에서의 유대인 박해는 이후에도 지속된다. 1968년에는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에서도 극심한 반체제 시워가 있었다. 정부는 소요를 진압하면서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의 선동탓으로 몰아간다. 그후 폴란드에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반시온주의에 밀려 외국으로 강제 이주한다.


폴란드는 1945년 소련의 위성국가가 된다. 독일인 막스가 미리 피하지 못했을 경우 그도 무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동유럽에는 수세기에 걸쳐 존속해온 독일인 공동체들이 있었다. 국경이 수시로 바뀌었기에 강제 혹은 자발적 이주가 많았다. 전쟁 후, 폴란드 독일인들은 1945년 7월까지 50만~75만 명이 추방당했다. 그 와중에 사냥감처럼 보복당하는 독일인이 많았다. 소련군조차 그 잔학함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겨우 독일로 돌아간 귀국자들도 본국인들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겪어야 했다. 전후 어려운 상황속에 빈손으로 들어온 외부인을 반길 리 없었다. 독일인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와 폴란드인 학살의 주범 아르투어 그라이저 등은 전후 폴란드로 넘겨져 처형당했다.


동유럽 독일인들은 스탈린식 잔혹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승전국 소련을 위한 '살아있는 배상금'으로 처리되었다. 헤르타 뭘러의 '숨그네'는 루마니아 독일인들만의 고난을 그린 건 아니다. 소련으로 끌려간 독일 포로들은 각종 부역과 비인도적 처우의 표적이 된다. 중노동수용소로 유형된 이들은 거의 되돌아오지 못했다.


폴란드 지주의 자제이자 거부가 된 카롤도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는 붉은 군대가 독일군에 승리하면서 급속히 공산주의화된다. 1954년 스탈린화된 통제기구는 성인 인구의 1/3을 '범죄의심 분자'로 분류했다고 한다.


 작가 레이몬트는 1899년, 세 사람의 운명을 모르는 채로 책을 출간했다. 대영주의 아들, 독일인 기업가의 아들, 유대인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악의 축으로 비추었을 것이다. 레이몬트가 꼽은 대표적인 반동들이 한때 승리한 적도 있었다. 영화는 사람과 도시의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그러나 약삭빠르게 한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들도 무참하게 사라졌다. 안제이 바이다는 1975년, 공산 정권 시절 이 영화를 완성했다. 그 이후로도 세상은 바뀌었다. 공포스럽지만 그게 역사다.


폴란드는 1989년 민주화 운동 후에야 시장 경제로 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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