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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림 Nov 18. 2022

세계인, 이방인

유대인이야기,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1975),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를 읽었다. ‘이것이 인간인가’(1947)가 핵심이겠으나 그건 읽지 못할 것 같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낄 테니까. 유대인들은 당한 일도 많고 그것을 글로도 잘 남겨 독자들의 심장을 울린다. 프리모 레비는 글에서 한스 마이어라는 인물을 소개했는데 그는 유대인을 ‘휴가 중인 죽은 목숨, 죽어야 할 사람’임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한스 마이어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으나 자살했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시절 이후 내내 연장되었던 그의 선택이 그로 하여금 삶의 기쁨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살아갈 능력이 없게 만들 정도로 엄격하고 비타협적인 태도로 그를 이끌었다’고 썼다.       


유대인은 이차대전 당시 600만 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한 민족을 대상으로 이런 절멸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불과 8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이해 불가한 일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 같다. 유대인들은 도대체 누구지?


홍익희의 ‘유대인 이야기’(2013)를 읽어보았다. 유대인들이 세계를 주무른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책을 읽어보니 세상이 그들에 의해 많이 바뀌어왔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곤 했다. 1, 2차 세계대전 전후를 보더라도 유대인은 급진적인 사회주의자 혹은 악랄한 자본주의자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백색테러와 적색 테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민족이 가진 선민의식은 아마도 독이자 약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들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니 이방인의 눈으로는 제대로 독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세상의 박해를 받은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대응하는 힘을 갖춘다. 그것이 이들의 생존 방법이다.     


이런 생존 방법도 사실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주어졌다는 것이 옳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금융, 은행업과 같은 돈과 관련된 사업에 수완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1차, 2차 이산을 거치면서 살던 땅에서 추방당한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땅을 가질 수 없으므로 농업에 종사할 수 없었고 관료로의 신분 이동이 불가능했다. 수공업, 전당포, 대부업 등이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고대나 중세 종교 사회는 이자 받는 일을 금기시했다. 시간차에 의해 발생하는 이자는 시간이라는 신의 영역에 인간이 개입하는 일이기에 죄악이라고 보았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도가 금하는 일을 하고 살도록 운명 지어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가면서 이재에 대한 수단과 방법을 쌓게 되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의 민족이다. 저절로 글로벌하다. 그들의 인적 네트워크는 범유럽과 이슬람을 아우른다. 이슬람과 유럽의 가톨릭은 직접 교역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양쪽을 중개할 때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17세기의 인물들도 ‘유대인이 사는 곳에는 어디서나 무역과 상업이 넘쳐흐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환차나 환어음, 신용거래, 유가증권 같은 경제활동을 위해 신사고를 발전시킨 건 당연하다.      


들은 대대로 지식과 실용을 숭상해왔다. 교황청은 자의적인 성서 해석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반인들이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는 것을 금지했다. 유럽인들의 문맹률은 98%에 달했지만 유대 민족만은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성서 강독과 암기, 토론은 그들에게 필수적인 교육과정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무 지워야 하고 공동체는 어린 학생을 똑똑하게 키워내야 할 책임을 다했다. 개인주의적인 데다 독립적 개성과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서구인들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사회적 연대와 책임, 바른 행동, 자선 등에 가치를 둔다. 일반 유럽인들과는 달리 이들이 지식과 수완을 갖춘 독보적 존재가 되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대인들은 운명적으로 자신들이 거주하던 땅에서 차례로 추방된다. 팔레스타인에서 바빌로니아로, 로마제국 아래에서는 유다 왕국의 땅으로부터 그 외의 다른 변방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이산 후에도 공동체를 형성했으나 언제나 이방인으로 취급되었다. 스스로도 다른 민족과 동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 교육 방침, 선민의식 등을 강화해 나갔다. 이들은 이교도이자 나라를 교란시키는 수전노로 취급되어 주위의 멸시를 받았다. 중세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나 유대인들의 몸에 치욕을 뜻하는 노란색 표시를 강요했다. 1216년의 교황청 주관 라테란 공의회도 같은 일을 강요했다. 심지어 기독교도로 개종한 사람들조차 ‘돼지 무리’를 뜻하는 마라노라고 불러 경멸했다. 유대인은 저주와 혐오의 대상이었으며 정세가 복잡할 때면 일차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기 다반사였다.      


13세기 영국, 14세기 프랑스, 15세기 스페인, 16세기의 이탈리아 등 중세 유대인들은 살던 곳에서 집단으로 추방되곤 했다. 쫓겨날 때에는 금이나 은과 같이 현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귀금속은 가져갈 수 없었다. 놀라운 건 유대인이 도착한 곳은 경제적으로 부흥했고 그들을 추방한 곳은 그후로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혁신을 생활화했으며 판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되도록 넓은 시장을 추구했고 늘 생산성 향상과 유통구조의 합리화를 꾀했다. 이 모두가 디아스포라 간의 소통으로 상업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한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국토회복을 뜻하는 레콘키스타는 유대인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사에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스페인 왕국은 1492년에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다. 유대인은 원래 1/3은 현찰, 1/3은 보석이나 골동품, 1/3은 부동산으로 재산을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방식을 알고 있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이들은 금, 은을 제외한 보석류를 지닌 채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자리 잡는다. 그 후 앤트워프나 암스테르담이 자본주의의 개화를 담당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6세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 유대인을 적극 수용했다. 청어 저장을 위한 소금 정제 산업, 조선업 그리고 동방무역은 네덜란드를 급속 성장시킨다. 그 후 동인도회사나 증권거래소가 자본조달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다하면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국도 해상무역의 진흥을 위해 유대 금융인이 필요했다. 17세기 영국의 동인도회사나 레반트 회사와 같은 동방 무역회사들은 유대 금융인들의 역할을 필요로 했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권리장전과 관용법을 통과시켜 비국교도에게 신앙을 자유를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유대인들은 자유롭게 금융과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영국이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이로부터 ‘합리주의’, ‘기업가 정신’, ‘고객만족 경영’ 등이 출연하게 되었다.      


이제 미국 유대인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자리에 올랐다. 비 유대계의 보통 사람들이 아무리 다른 정서를 지녔다 해도 이들 유대인이 장악한 언론, 정계, 금융권, 예술계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돈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고 정책은 그들의 주머니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로비스트들은 돈 많은 이들의 생각을 정책 입안자들에게 전달한다.      


미국의 건국 세력은 청교도와 프래그머티즘이다. 청교도는 금욕 근신해서 지상의 행복보다는 죽음 이후의 지고의 행복을 구하려 한다. 재미있게도 청교도와 같이 미국을 일으킨 정신은 실용정신이다. 과학 만능 위주, 공리 정신과 같은 세속 정신과 관계가 깊다. 이들의 바탕에 프리메이슨과 유대인도 있는 것이다. 합리주의, 논리적 세계관에 바탕한 프리메이슨, 금융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유대인들이 모여 미국의 한 축을 만들었다.      


현재 유대인은 전 세계적으로 1700만 명 정도다. 이 적은 인구, 게다가 한꺼번에 모여있지도 않은 이 사람들이 그 많은 소문의 주인공들이라니 놀랍지 않나. 미국에서 그들은 승리자다. 그들이 국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뒤흔든다는 건 명명백백한 일이다.      


유대인은 성공했다. 그렇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란드 유대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라는 용어로 포스트 모던 시대의  사회현상을 풀이했다. 라트비아 출신 유대인 이사야 벌린은 일원론과 결정론에 맞서 다원주의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그들의 작업이 직접 겪은 이산으로부터 나왔음은 당연하다. 삶은 견고하지 않았다. 끝없이 움직였다.


위에서 소개한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간하고 한스 마이어처럼 자살했다. 그는 책에서 ‘이해하기’와 ‘용서하기’라는 낱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렇다고 고통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방인이자 세계인으로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살아온 일 자체가 고난의 역사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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