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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림 Nov 28. 2022

사랑은 한 편의 영화

애너벨 리, 오에 겐자부로

아주 오랜 옛날/바닷가 왕국에/한 소녀가 살고 있었네/그 이름은 애너벨 리/소녀는 오로지 이 나와의 사랑만을 생각했다네’라고 시작하는 ‘애너벨 리 Annabel Lee’(1849). 에드가 앨런 포가 24세에 사망한 그의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시라고 한다. 아름답고 슬픈 데다 꽤 기괴한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상상하겠지.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소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2007)를 읽었다. 예전부터 어떤 소설일지 궁금했다. 사실 소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오에와 주변 인물들이 실물로 등장하고 정치, 사회 분위기도 현실감 있게 반영되어 있으니 회고록일까. 소설을 빙자한 다큐인 것 같고 그 반대인 것도 같다. 줄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 포기한 극본을 오에와 주변 사람들이 30여 년 만에 완성한다는 내용이다. 전근대적 소설 장르는 해석, 상상력, 대화, 기억과 더불어 새로운 형식으로 거듭난다. 이를 통해 참여자 모두는 내면 깊숙이 도사리고 있던 상흔을 치유해 나간다. 문학은 작가 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기억과 관심으로 완성된다. 작가 나름의 문학을 위한 오마주이다.        


제목에 애너벨 리라는 이름이 들어간 걸로 봐서 죽음을 초월한 사랑 얘기가 아닐까 추측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출간 당시 작가는 이미 70세를 넘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중 본격 연애담을 읽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분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에게는 실천, 참여, 위로와 화해 같은 낱말이 화두처럼 따라붙는다. 소설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했다.      


포의 시에 나오는 애너벨 리가 죽은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싸늘하게’가 문제다. ‘천상에서도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천사들이 그녀와 날 시기했던 탓./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들이 알 듯)./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그녀를 싸늘하게 하고/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은.’  

    

시의 애너벨 리는 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녀를 시기한 건 천사다. 아름다운 데다 열렬히 사랑하는 애인까지 있어 천상의 존재마저 질투를 했으려나. 반면 오에의 제목에 등장하는 애너벨 리의 죽음은 사람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세상도 그녀의 죽음을 돌보지 않는다. 아이는 고통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난다.     


소설 속 한 인물은 포의 '애너벨 리‘에서 소녀와 청년이 사랑의 진도를 어디까지 나갔을지 궁금해 한다. 역시 등장인물인 오에 겐자부로는 ‘바닷가 그 왕국에선/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라는 부분에서 ‘사랑’은 에로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저 어린아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함 정도가 아닐까 한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애나벨 리라는 이름에는 뭔가 모를 수상함이 있다. 200년 전이니 지금 잣대로 해석하면 안되겠지만. 포는 사촌 버지니아와 결혼했는데 그는 27세, 사촌 버지니아는 불과 13세였다. 이 소설에서도 잠깐 등장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1955)에서 주인공 험버트도 애너벨 리 Annabel Leigh라는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다. 소년 험버트는 애너벨 리를 사랑했으나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처만 남았다. 그 이후로 험버트는 어린 소녀에 대한 이상 병증을 갖게 된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의 애너벨은 여배우 사쿠라이다. 사쿠라의 부모는 전쟁 중 사망했다. 그 후로는 마거섁이라는 미군이 10세 전후의 이 소녀를 후원한다. 이 군인은 사쿠라를 아역 배우로 데뷔시키고 본인의 8mm 영화 '애너벨 리‘에도 출연시킨다. 마거섁은 철수하면서 사쿠라와 같이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 뒤 마거섁은 성인이 된 사쿠라와 결혼한다. 전쟁고아와 미군 병사는 사랑을 찾았다. 끝. 해피엔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쿠라는 수 십 년 간 늘 두통과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의 불안증에 뭔가 있는 아닐까 의심스럽다.     

 

오에는 십 대 시절 미국문화원에서 이 영화의 일부를 본 적이 있다. 마거섁이 촬영한 영화 '애너벨 리‘의 소녀는 흰옷을 입은 채 풀밭에 죽은 채 누워있다. 진짜 애너벨 리처럼. 사쿠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은 그 영화를 차마 보지 못한다. 주인공 소녀 사쿠라는 마거섁이 준 약을 먹고 죽은 듯 누워 있어야 했다. 의식 없이 누워있던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쿠라의 불면과 불안은 무의식 속에 일어난 이 사건과 관계있다.

    

대학 동창 고모리는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1810)의 일본판 번안 영화를 준비 중이다. 오에는 이미 비슷한 주제를 가진 ‘만엔 원년의 풋볼’(1967)작가이기에 이 시나리오 집필에 적당하다. 미하엘 콜하스는 16세기 독일 상인으로 지방 영주에 의해 재산을 빼앗기고 아내도 죽임을 당한 남자다. 그는 부패 권력에 맞서 민란을 일으키고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오에는 메이지 시대의 시코쿠지역 농민 봉기를 주도했던 메이스케를 미하엘 콜하스에 대체할 인물로 선정한다.      


오에와 고모리, 사쿠라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메이스케 전승담을 듣는다. 오에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전후 메이스케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기까지 했던 여걸들이다. 전쟁 전후 여자들의 삶은 가혹하고 척박했다. 이들은 메이스케 이야기를 통해 여인 잔혹사를 알리는데 목적이 있었, 풍운아 주변 여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마을 여인들은 외치고 통곡하며 격정을 공유했다.


세 사람의 대화가 거듭되면서 영화의 주제와 인물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메이스케가 주연이었다. 어머니 역할은 대사도 거의 없는 엑스트라급이다. 그러나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점점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반란의 공모자였고 메이스케가 죽은 후 다시 환생한 메이스케의 두 번째 반란을 지도한다. 당연히 사쿠라가 메이스케 어머니 역이다.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그런데 영화 촬영이 개시된 다음 문제가 터져 나왔다. 외국인 스텝이 영화에 출연할 아동 무용수들을 색다르게 촬영한 것이 문제였다. 에드가 드가가 그렸던 ‘에투알’(1878)이 떠오른다. 그림은 위층 박스석에서 아래 무용수를 바라보는 구도로 그려졌다. 먹이를 잡아채려는 매의 시선이나 다름없다. 누군가 위압하듯 발레리나를 내려다본다. 지금 커튼 뒤로 몸을 감춘 중년 남자의 시선이다. 검은 야회복의 남자는 가난하고 연약한 아이를 자신의 성적 도구로 낙점한다. 소녀들은 조숙한 타락자가 되기 쉬웠다. 촬영기사는 반라의 소녀들을 몰래 찍었고 사진들을 인화해 보관하다가 들킨다. 영화 촬영은 결국 무산된다.     








어린 사쿠라는 약에 취해 강간당했다. 전후 주둔한 미군들은 일본 여아들을 이용한 ‘구역질 나는 사진집’을 많이 제작했나 보다. 마거섁은 드가 그림에 나오는 후원자나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사쿠라를 잠재워 겁탈하고 그 장면을  영상화했다. 명백한 아동 포르노물이다. 아이에게는 천사가 장난을 친 거라고 세뇌시켰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보는 대로 세상을 해석한다. 애너벨 리가 순수한 사랑을 했다고 믿으면 그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보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기 어렵다. 작가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는지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삼인조는 이제 70대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사쿠라에 대한 고모리의 감정은 짝사랑과 집착, 체념의 세월을 거쳤다. 둘은 귀국해 다시 오에를 만났다. 세 사람은 ‘메이스케의 환생’을 잊지 않았다. 아니, 시나리오의 제목은 아예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이 될 것이다. 오에가 쓰고 고모리가 기획하고 사쿠라가 주인공이다. 메이스케 어머니는 메이스케 없이도 혁명을 주도한다.


 이제 이들 노인들에게 돈을 대 영화를 만들 제작자들은 없다. 대신 여성들의,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동네 연극이 만들어진다. 숲 속 무대에는 마을 여자들이 준비한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의 막이 오른다. 스스로를 위무하는 한판 굿이다.      


고모리는 이번 연극이 끝나면 암으로 사망할 것이다. 오에는 자폐 아들의 보행 연습에 매달릴 테다. 고모리는 오에에게 그들의 30년를 책으로 써 달라고 한다. 고모리는 이런 묘비명을 원한다. '랑이란-그저 한 편의 영화일 뿐'. 단순하구나. 문학도 영화도 그리고 사랑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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