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Drill(드릴)은 힙합의 하위 장르로 2020년대에 들어 전 세계의 힙합씬에서 가장 핫한 음악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방송된 국내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Mnet <쇼미더머니11>를 비롯해 많은 래퍼들이 드릴 장르의 곡을 발표하는 등 주류 힙합 장르로 자리 잡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드릴은 단어가 가진 사전적인 의미처럼 날카롭고, 어두운 폭력적 장르의 힙합이다. Trap(트랩)과 유사한 장르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Drill은 변칙적이고 불규칙한 스네어와 808 베이스를 빠르게 슬라이딩하여 독특한 무드를 느낄 수 있다. 갱(Gang) 단에서부터 시작한 음악인만큼 폭력과 범죄에 대한 고어한 가사가 특징이다.
Drill의 흐름, Chicago-UK-Brooklyn
2010년대 초 시카고는 살인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높은 범죄율을 기록한 도시였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래퍼들은 총기를 이용한 살인에 대한 가사를 담은 음악을 만들었고, 당시 Pac Man이라는 래퍼가 실제 총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복수심에 가득 찬 살벌하고 폭력적인 가사를 담은 드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갱 문화와 시카고 후드를 트랩비트 위에 얹으며 마치 총의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듯한 'Pow', "Grrrr'등의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시카고 드릴의 어둡고 폭력적인 분위기가 영국으로 넘어갔다. 런던 남부의 브릭스턴 지역 역시 흑인 이민자와 와 빈민가가 형성되면서 우범지역으로 분류되었고, 그렇기에 시카고 드릴에게서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을 영국 스타일로 녹여낸 것이다. 시카고 드릴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국은 미국과 달리 총기 소지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UK 드릴은 '칼'과 관련된 갱단의 문화를 담은 가사가 특징이다. 이후 영국의 프로듀서들은 자신들의 장르인 Grime(그라임)과 UK개러지 등의 전자음악을 섞어 현재의 UK Drill 장르를 탄생시켰다. 현재 우리 귀에 익숙한 Drill 장르는 대부분 이때 형성된 UK Drill 장르의 곡으로 카운터 스네어와 베이스의 슬라이딩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에 드릴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매체들은 드릴이 범죄를 조장하는 문화라 비판했고 2018년에는 유튜브에서 드릴 래퍼들의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삭제되기도 했다.
영국 정부가 드릴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 UK 드릴은 다시 2010년대 후반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브루클린의 래퍼들은 영국의 프로듀서와 협업하여 브루클린 드릴이자 NY드릴을 탄생시키며 미국 전역에 큰 히트를 치게 된다. Pop Smoke는 808 Melo와 함께 탄생한 <Dior>을 비롯한 브루클린드릴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2020년 Pop Smoke가 괴한의 총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한번 위험하고 폭력적인 범죄를 다루는 드릴 장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는 커졌다.
이후 뉴욕의 브롱스 지역의 래퍼들은 팝송들을 Drill장르로 리믹스한 브롱스 드릴을 탄생해 내며 여전히 드릴 장르의 흐름을 이어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POP장르를 샘플링했기에 이전보다는 친화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Drill을 2023년 힙합씬에서 가장 핫한 장르 중 하나로 만들었다.
한국의 Drill
한국 래퍼들 역시 이 흐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창모는 2020년 <Swoosh Flow>를 발매하며 UK Drill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고 Fleeky Bang, 블라세, 릴러말즈 등이 드릴 비트를 사용한 곡을 탄생시켰다. 국내 힙합씬에서는 싱잉랩을 비롯한 emo 힙합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Drill의 강렬한 비트와 날카로운 래핑이 이전과 ’반‘을 이루며 주류의 장르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Drill은 힙합씬을 넘어 K-POP 아이돌의 음악까지 진출했다. 스트레이키즈의 프로듀싱 유닛3RACHA(방찬, 창빈,한)는 유닛명과 동명의 곡 <3RACHA>에서 Drill 비트 위에 세계적 아티스트로 성장한 현재에 대한 자부심과 패기를 담아냈다. 또, 몬스타엑스의 <춤사위(Cresendo)>는 Drill 비트와 전통 악기인 거문고와 태평소를 매치해 Drill을 한국적으로, 대중적으로 해석했다. 강렬한 래핑은 물론이고 벌스와 프리코러스의 빌드업, 코러스의 싱잉랩 그리고 그룹이 가진 '섹시함'을 강조하는 가사까지 구성에 있어서 완급 조절이 인상적이다. 두 곡 모두 Drill 장르임을 강력하게 상징하듯 'Brrrr', 'Grrrr', 'DODODO' 등 총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애드리브와 가사가 등장한다. 같은 Drill 장르지만 다른 해석의 힙합 K-POP곡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스테이씨는 위의 두 남자아이돌의 힙합 곡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간다. 최근 발매한 3번째 미니앨범 [TEENFRESH]의 <I Wanna Do>에서는 Drill비트와 벨소리를 매치하여 컨템포러리 R&B장르의 곡을 만들어 냈다. 이미 전작인 <I WANT U BABY>에서 이미 Drill 비트를 사용한 적이 있는 스테이씨는 멤버들의 고음 그리고 음색과 만나 몽환적인 R&B곡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로 Drill을 사용한다. Drill의 무거운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와 대조되는 멤버들의 보컬을 필요에 맞게 변형하여 사용하여 단순히 힙합 장르에서의 Drill을 벗어나 대중적인 K-POP 스타일로 비트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