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둔 분노가 병이 될 때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대체로 착하고, 이해심 많고,

늘 먼저 양보하고,

갈등이 생기면 조용히 물러난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참 너그러운 사람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는

소리 없이 끓고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

우리는 자주 잊는다.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그건 내가 느끼는 부당함, 슬픔,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려는 신호다.

그 신호를 계속 무시하면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대신, 몸으로 옮겨간다.


설명할 수 없는 통증,

무기력, 두통, 피로, 그리고 우울감.

그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언어일 수 있다.


화를 내는 것이 두려웠다.

상처 줄까 봐, 미움받을까 봐,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나는 늘 참는 쪽을 선택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누르고, 눌러온 감정이

결국 나를 병들게 만들었다.

타인을 향해야 할 분노가

나를 향한 자책과 자기 비난으로 바뀌었고,

그건 어느새 나를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있었다.


분노는 표현되지 않을수록

더 날카로운 형태로 변한다.

폭발하거나,

안으로 고요히 침잠하거나.


그러니 이제는

분노를 밀어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려 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무엇이 그렇게 아팠던 거야?”


그 질문 하나가

감정을 병이 아닌

대화로 이끄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분노를 '나쁜 감정'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무엇인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다는 증거로 바라본다.


이제야 조금씩,

마음이 병들지 않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눌러둔분노 #감정의신호 #마음의병 #심리학에세이

#상담심리 #감정표현 #내면회복 #브런치스토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냉소는 상처 입은 자존심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