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순간


잘하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말을 고르느라 숨을 죽이지 않아도,

분위기를 맞추느라 나를 먼저 접지 않아도

그 자리가 그대로 유지되던 시간.


그때의 나는 특별히 성숙하지도,

더 배려 깊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지쳐 있었고,

조금 솔직해져 있었을 뿐이다.


늘 관계 안에서

‘잘해야만 남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자리가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래서 마음보다 먼저 기준을 세웠고,

감정보다 먼저 태도를 다듬었고,

괜찮아 보이는 나만 남기려 애썼다.


그런데 어느 날,

잘하려는 힘이 빠진 자리에서

관계가 오히려 편안해졌다.


애쓰지 않자

기대도 줄었고,

기대가 줄자 실망도 줄었다.

무엇보다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긴장이 사라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관계가 유지된 이유는

내가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관계가 애초에

나를 시험하지 않는 자리였다는 것을.


잘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순간은

내가 느슨해져서가 아니라

그 관계가 조금 안전해졌다는 신호였다.


모든 관계가 그런 자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런 순간을 경험한 마음은

이제 안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늘 안정적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런 관계 앞에서는

잘하려는 마음보다

머무르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걸.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조금 덜 애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관계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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