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 남아도 되는 자리


관계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괜찮았던 순간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말을 건네야 하고,

분위기를 살펴야 하고,

관계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나라도 애써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소홀해 보일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질까 봐

스스로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쉬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쉬지 못하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주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도 되는 자리가 있었다.


말이 없어도 괜찮았고,

기분이 애매해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늘의 내가 특별히 괜찮지 않아도

굳이 상태를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 자리에선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잘 반응하지 않아도,

관계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연결이 유지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 남아도 되는 자리는

나를 방치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재촉하지 않는 자리였다.


그곳에서는

존재가 곧 참여였고,

함께 있음이 이미 충분한 역할이었다.


늘 무언가를 해야만

곁에 있어도 된다고 믿어왔던 마음에게

그 경험은 조용한 충격처럼 다가왔다.


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 관계가 있구나.


아,

계속 증명하지 않아도

연결이 유지되는 순간도 있구나.


그 깨달음은

사람을 더 의존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조금 내려놓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은

나를 더 나태하게 만든 게 아니라,

관계 안에서

나를 덜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는

관계를 관리하지 않아도 되었고,

미리 대비하지 않아도 되었고,

사라질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나로

충분했다.


그 경험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기억한다.


관계란

항상 노력과 역할 위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를

그대로 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남아도 되는 자리는

관계가 나에게 건네준

가장 조용한 안심이었다.







"이 글은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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