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투자로 하차감을 사야 할 텐데

2026년 3월 5일 목요일

by 전귀자씨

자동차에 관심이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이다 보니 한 번쯤 멋진 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하차감이라고들 표현하던데, 그런 허세를 부려보고 싶은 순간이 가끔 온다. 사람이니 뭐, 다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차에 많은 돈을 쓰고 싶지가 않다. 하차감을 누리려면 제대로 투자해야 하는데 큰돈 쓸 생각은 없으니 늘 딜레마다. 아마도 증권부 생활을 오래 한 영향이지 싶다. 감가상각이 발생하는 대상에는 투자 가치를 못 느낀다.(사실 돈도 없다.)


2~3년 전 한 대형 증권사 대표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마이바흐 정도는 쉽게 살 여윳돈을 들고 있지만, 새 차를 사본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차에 쓰는 돈은 하늘로 날아갈 돈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본인이 탈 차는 늘 중고로 사고, 그렇게 절약한 돈은 주식 등 생산적인 투자에 활용한다고 했다.


당시 이 대표의 이런 가치관에 상당히 공감했었다. 늘 남의 시선부터 의식하던 내 눈엔 중고차 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의 태도도 쿨하게 보였다.


오늘 내 차 주행거리가 10만km를 넘어섰다. 계기판을 보다가 문득 머릿속으로 하차감과 감가상각, 증권사 대표와 중고차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홀린 듯 엔카 앱을 열어 평소 관심 있던 모델들 시세를 살폈다. 적당한 투자와 적당한 하차감을 동시에 채워줄 녀석이 나타나주면 좋겠다. 아, 아내는 아직 이 상황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꼭 이런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