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요일
출근길 버스에 올라 항상 앉는 맨뒤 창가 자리로 갔다. 약간 높은 위치에서 버스 내부 전체를 둘러보는 게 은근히 재밌어 맨 뒷자리를 선호한다. 내가 타고 4~5 정거장 정도 더 갔을 때 빨간 모자를 쓴 어르신이 느릿느릿 버스에 올랐다. 자세히는 안보였지만 모자엔 미국 국기도 그려져 있고 훈장 같은 것도 붙어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청력도 안 좋은 듯했다. 어르신은 기사에게 큰 소리로 보훈부 가는 버스가 맞냐고 물었다. 목적지까지 듣고 나니 참전용사로 보였다.
버스기사는 서울역이나 갈월동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고 두세 번 설명했다. 어르신이 잘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버스 출발이 지연되자 차 안의 이목이 어르신에게 쏠렸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폰을 보면서 한 번씩 눈을 치켜뜨고, 다른 어르신들은 그 어르신을 빤히 지켜봤다. 그러다 어떤 한 중년 여성분이 다가가 도움을 자청했다. 여성분이 어르신을 노선도 앞으로 데려가 설명하는 동안 기사님은 문을 닫고 출발했다.
내가 광화문에서 내릴 때까지도 여성분은 어르신에게 환승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보훈부에 가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들어주는 이 없는 허공을 향해 여러 번 설명했다. 여성분에게는 연신 깍듯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비록 늙고 약해지고 남루해졌으나, 품위만큼은 잃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회사까지 걸어가며 그의 싱싱하고 총명했던 젊은 날을 상상해 봤다. 잠시 서글펐다. 나도 참 유난이다. 어르신이 목적지에 잘 도착해 볼 일을 보고, 무사히 집에 돌아가셨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