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하며 세상을 익혀가는

2026년 3월 13일 금요일

by 전귀자씨

퇴근하니 아들이 본인 자는 모습을 찍겠다며 침대 앞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타임랩스 같은 기능으로 잠자는 9~10시간을 촬영하겠다는 것이다. 동물 관찰 프로그램 PD가 야생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밤새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와이프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들의 창의적 발상은 아니었다. 반 친구가 먼저 본인 자는 모습을 촬영해 와 학교에서 자랑한 모양이다. 아이는 그게 재밌어 보여 따라 하겠다는 것이었다.


가끔 아들은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사달라고도 한다. 이 역시 나중에 알고 보면 친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졌거나, TV 속 뚜식이와 흔한남매가 먹는 장면을 보고 따라 하려는 것이었다. 입 짧은 엄마 유전자의 후예답게 열에 아홉은 한 입 먹고 고스란히 남긴다.


아이의 일상 속 도전은 대체로 자발적인 궁금증보다는 이처럼 타인 모방과 맞닿아있다. 세상을 익혀가는 아들 나름의 방법 같아 보고 있으면 기특하다. 기시감 드는 경험들의 축적을 통해 처음 보는 것도 어디선가 본 것처럼 시큰둥한 어른과는 다르다. 그 호기심이 때론 부럽다.


내일 아침 타임랩스 속 본인의 자는 모습을 보며 신나 할 아이 얼굴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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