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수요일
갇히는 것에 대한 공포를 처음 느낀 건 군대에서였다. 일병 때쯤 혹한기 훈련장으로 기억한다. 작은 텐트에서 분대원 5명이 나란히 붙어 자는 상황이었다. 이등병 막내가 텐트 내부 불을 끄자 눈앞이 암흑으로 변했다. 집에서라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질 텐데, 숲 속이다 보니 아무리 눈을 뜨고 기다려도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됐다.
눈앞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밤새 이어질 것이란 생각에 도달하자, 갑자기 엄청난 공포가 엄습했다. 작은 상자에 갇힌 기분과 함께 호흡이 거칠어졌다. 양옆에 선임들이 자고 있었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텐트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믿었던 분대원이 탈영하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날 쳐다보던 분대장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두 번째 기억은 10여 년 전 미국 출장 때였다. 뉴올리언스에서 워싱턴 DC로 넘어가는 델타항공 국내선 비행기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작은 비행기라 창문 쪽 곡선 벽면이 내 옆통수에 닿을 것만 같았다. 이륙을 기다리는데 뒤늦게 탄 백인 남성 한 명이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최소 150kg은 될 것 같은 거구였는데, 그의 엄청난 덩치와 창가 벽면 틈바구니에 낀 나는 또 한 번 호흡이 거칠어지고 불안감이 폭발했다.
1~2분 정도 버텨보다가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았다. 다급히 “Excuse me!”를 외치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승무원이 다가오더니 곧 이륙한다고, 도로 가서 앉으라고 했다. 당시 겪던 증세를 유창한 영어로 설명할 수 없던 나는 더듬더듬 말하다가 포기하고 자리로 돌아가 워싱턴에 도착할 때까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이후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탈출 가능한‘ 자리에 위치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령 기차나 비행기에 타면 반드시 통로 쪽에 앉는다. 옆에 문이 없는 승합차의 맨 뒷자리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 빛을 완벽한 차단하는 암막 커튼이 있는 숙박 시설에 가면, 그 커튼을 무조건 살짝 열어놓고 잔다.
이상 세종 출장 내려가는 기차 안 통로 쪽 좌석에 앉아있다가 몇 자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