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도 옷장 앞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왜 이리도 입을 게 없을까. 정말 희한한 일이다. 옷이 넘치다 못해 집안 여기저기 쌓여 있는데 눈길조차 안 간다. 지나간 유행 코드가 되어버린 패배자들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나 보다. 유행을 관통할 줄 모르는 내 빈약한 안목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인간이 이렇게 이기적이다.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일상 풍경이라고는 하나 욕심은 멈출 줄 모르고 만족은 채워지는 법이 없다.
간신히 입을 옷을 골라 옷장 문을 닫으면 이번에는 집이 눈에 들어온다. 안방이 이렇게 작았던가. 침대 하나 넣었는데 여유 공간이 없다. 역시 집은 커야 하나 보다. 작년에 목돈 들여 싹 뜯어고쳤을 땐 ‘인테리어 맛집’이라고 여기저기서 칭찬했다. 내 눈에도 내 집만 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눈 돌아가게 멋진 집이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성공 방정식으로 여겨지던 '원목 마루 + 화이트' 조합도 벌써 식상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들어오던 촬영 공간 대여 문의도 이젠 뜸하다. SNS 속 눈 돌아가게 이쁜 집들이 다 낚아챈 게 분명해. 쏠쏠한 용돈 벌이가 끝나간다는 속상함보다 내 집이 더는 ‘신상’이 아니라는 아쉬움이 크다. 내 공간도 내 옷들처럼 유행 코드의 벽을 넘지 못했나. 자꾸 단점이 눈에 들어온다. 욕심은 멈출 줄 모르고 만족은 채워지는 법이 없다.
밖으로 나오면 집 앞에 주차된 자동차가 보인다. 기왕 무리해서 ‘탈(脫) 국산’ 할 거면 돈 좀 더 써서 상위 모델로 갈 걸 그랬다. 이건 어디 가서 외제차 탄다고 자랑하기도 애매하고. 세단 아니면 SUV, 한쪽을 확실히 택하는 게 나을 뻔했지. 지금 차는 레저용 RV라 하기에도 크기가 어중간해. 속사포 랩이 마음속을 스친다. 장인어른께 물려받은 첫 애마는 국산 SUV였다. 명의 바꾸고 차 키 받아 처음 시동 걸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 정말이지 욕심은 이어지고 만족은 금세 메말라간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생사 소확행 추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겠다고 다짐할 때만 해도 이런 세속적인 욕구는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낮춰놓은 줄 알았던 만족의 기준은 여전히 높았고, 사방에는 온통 사고 싶고 바꾸고 싶은 것 천지였다. 예상과 다른 전개에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월든 호숫가의 소로우처럼 고즈넉한 동네로 이사 가면 속세의 욕망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니, 내가 너무 순진했다. 푸하하.
그리고 말이 나와서 소확행이지, 소확행도 소소하게 무엇인가를 실천한 다음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려 하트 세례를 거하게 받을 때 비로소 내 곁으로 다가오더라. 남의 눈치 안 보고 살더라도 그 과정은 남에게 과시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모순이 현대판 소로우의 행복이었다.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