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걸어서 퇴근하던 늦은 밤의 일이다. 창의문로 언덕길 꼭대기에 도착해 윤동주 문학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잘 정리된 털과 귀여운 옷. 누군가의 반려견이 분명했다.
불안한 듯 사방을 둘러보며 킁킁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추운 날씨에 몸을 덜덜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순간 저 친구를 주인에게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명감이 들었다.
일단 우왕좌왕하는 아이부터 품에 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해피야” 친숙한 이름을 부르며 세상 착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로 열심히 ‘네가 내게 오면 주인을 찾을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냄새 한번 맡아보라고 손도 내밀었다.
하지만 강아지는 내게 오지 않고 주변을 서성일 뿐이었다. 나의 등장이 되레 불안함을 가중시킨 것 같았다. 움직임이 빨라 강제로 잡을 수도 없었다. 그냥 가던 길 갈까 하는 생각과 측은지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좀 더 애써보기로 했다.
제멋대로 부르는 “해피야”가 이후로도 10여분 동안 이어졌다. 강아지는 나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계열사 뒤 주택가를 향해 총총 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한 철제 대문 밑으로 몸을 쏙 넣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강아지는 대문 안쪽에서 참은 울분을 토해내듯 무섭게 짖었다. 몇몇 행인이 나를 힐끔 보며 스쳐 갔다. 시작은 착한 이웃의 의협심이었는데, 끝은 납치에 실패한 유괴범의 모양새가 됐다.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나를 나쁜 놈으로 기억할 것이다. 허탈함과 억울함,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선한 의도가 엉뚱한 오해로 이어지는 경우를 누구나 겪는다지만 그걸 동물한테까지 당하다니.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헛웃음이 나왔다.
학창 시절에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한 번 층수 버튼을 누르면 취소가 불가능해 동네 개구쟁이들이 1층부터 15층까지 다 눌러놓고 도망가곤 했다. 한 번은 그 장난이 막 이뤄진 엘리베이터에 탄 적이 있다. “아 뭐야” 짜증을 내뱉으며 버튼들을 마구 눌렀다. 취소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취한 행동이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 교복과 손의 위치, 환하게 켜진 14개의 버튼을 차례로 확인한 그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한창 중2병을 앓을 때라 교복 바지통은 좁았고 머리는 젤로 떡칠 돼 있었다. 심증을 확증으로 바꾼 그녀는 얄밉도록 맑고 고운 ‘땡!’ 소리가 매층 반복될 때마다 닫힘 버튼을 거칠게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유난히 고요했던 부암동 밤하늘로 퍼져나간 강아지의 울부짖음에서 문득 그날 날 경멸하듯 째려보던 엘리베이터 여사님이 떠오른 건 왜일까. 이 글을 강아지와 아주머니에게 바칩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