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V와 SNS에서 접하는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대부분이 이제는 나보다 어리다. 스크린 속 유명 배우도 연하, 수염 가득한 해외 축구 스타도 대개 연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동갑이란 사실에 안도감이 들 정도다.
이 사실이 새삼 놀라운 건 대다수 유명인이 나보다 연장자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아서다. 나도 내가 영원히 10대일 줄 알았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르는데 그 속도를 체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 늘어나니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세월의 흐름에 탄력이 붙는다.
가령 박용택은 은퇴했고 유상철은 먼길을 떠났다. 영원할 것만 같던 영웅의 퇴장을 마주할 때마다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났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일이 점점 잦다. 마음속에 인사이드 아웃 빙봉이 늘어만 간다.
2.
최근 회사 선배가 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함께 일하던 동료가 세상을 뜨니 며칠간 마음이 내려앉았다.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행복했으면 한다.
이 동료의 죽음이 유독 슬프게 다가온 건, 환자 스스로 SNS에 투병 사실을 공개하고 치료 과정을 수시로 기록해서였다. 선배의 계정을 팔로우하는 모든 이가 SNS를 켤 때마다 그의 치료 상황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기록은 건조했다. 항암 o차 치료를 마쳤고, 결과는 썩 좋지 않으며, 암세포가 어느 부위까지 퍼졌다는 식의 글을 선배는 보고서 작성하듯 무덤덤하게 썼다. 건조한 글이 올라올 때마다 슬픔으로 가득 찬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선배는 털이 빠진 환자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고, 떠나기 전까지 매일 여러 개의 게시물을 쏟아냈다. 치료 기록을 남기지 않을 때는 삶의 희망에 대해 썼다. 완치를 다짐하는 글조차 호수처럼 고요했다. 선배는 죽음을 예상한 듯했다. 댓글을 다는 지인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3.
나이 먹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유명인과 지인의 사망 소식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인간의 삶이 실은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운동회 달리기는 갈수록 지치는데, 이 레이스는 반대로 가속이 붙는다. 순식간에 끝나기에 싱거운 것이 인생이지 싶다.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복사까지 섰는데 말이다. 정확히는 믿고 싶은데 안 믿어진다. 기자 생활을 과학 매체에서 시작한 영향일까. 사망 직후 영혼이 몸에서 스르륵 분리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과학적으로’ 생각한다. 다급할 때만 주님을 찾는다.
사후 세상의 존재를 못 믿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내가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생각이 가끔 날 미치게 만든다. 종교의 구원에 의지하는 일상을 되찾으면 공포가 사라질까. 공격적으로 쏟아내던 선배의 담담했던 SNS 글도 실은 공포와의 사투 과정이었을 것이다.
4.
어쨌든 가장으로서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간다. ‘날마다 죽음에 가까워지니 단 하루도 허투루 낭비하지 말자’ 따위의 거룩한 다짐은 아니다. 그냥 거스를 방법이 없으니 사는 거다. 두려움을 안은 채로 말이다. 남들도 나와 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