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지금은 나와 무관한 일이 됐지만,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과학 전문 매체에서는 과학 분야 노벨상 발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수상자가 발표되면 속보를 내고, 간략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고, 종합 박스 기사를 내고, 수상자 인물 분석 기사를 냈다. 온라인과 별개로 지면으로도 기사가 나갔다.
과학기자가 과학자는 아니기에 수상자의 업적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노벨위원회에서 수상자 발표와 함께 그(들)의 업적을 소개했으나 연구 내용 자체가 워낙 어렵다 보니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당시 내가 출입하던 과천 미래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자단은 노벨상 발표날 해당 분야의 국내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노벨 물리학상 발표날에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초청하는 식이었다. 기자와 초청된 학자들은 미래부 브리핑실 화면에 뜬 현지 발표장의 생중계 영상을 주시했다.
저쪽서 수상자를 공개하면 이쪽의 전쟁도 시작됐다. 수상자 연구 내용을 가장 잘 아는 국내 학자가 마이크를 잡고 기사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줬다. 질문과 답이 뒤엉켜 오가고, 수화기 너머 데스크의 호통과 현장 기자의 ‘넵넵’이 몇 차례 오가면 기사가 얼추 완성됐다.
과천에서 기사를 넘기고 광화문으로 이동해 지면 기사까지 마감하면 데스크 선배가 서촌으로 우릴 데려갔다. 시원한 가을밤공기를 만끽하며 교보문고와 미국 대사관을 차례로 지나 서촌 먹자골목 단골 술집에 들어갔다. 임연수어와 국수와 어묵탕을 시켜 소맥을 들이부었다. 선배들의 꼰대 같은 잔소리도 그날만큼은 즐거웠다. 마감술의 매력이 그랬다.
새벽 늦게까지 마감주 때려 박은 뒤 비틀비틀 택시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세수도 안 하고 쓰러져 잤다. 다음날 속이 뒤집어져도 마감술은 기자 일의 마침표 같은 존재여서 멈추지 않았다. 노벨상 마감술은 특히 그랬다.
그 시절 함께 노벨상 기사 막던 동료들이 지금은 다른 신문사로 민간 기업으로 스타트업 창업으로 하늘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더 애틋한 가을 이맘때의 추억이다.
만 2년 동안의 주간지 부서 생활이 끝났다. 잡지 마감날인 목요일 밤마다 술 좋아하는 동료들과 종종 마감술을 기울였다. 기자 초년병 시절 서촌에서의 그 시간이 수년 후 목요일 밤마다 재현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 목요일을 100여 번 반복하고 나서 이 부서도 떠나게 됐다.
새 출근지인 세종시에서 첫 근무를 마치고 KTX에 올랐다. 힘든 하루였다. 달리는 기차 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잠시 감상에 빠져 몇 자 끄적여 보았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비까지 내린다. 오늘은 혼자서라도 오늘의 마감주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