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사 발령으로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세 식구가 세종시로 내려온지도 석 달이 흘렀다. 내 집을 다른 이에게 세주고 나는 다른 이의 집에 세 들었다. 거주지가 바뀌다 보니 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3년 평창동에서 삶이 나와 내 가족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줬는지 실감하는 요즘이다.
2.
물론 몸은 진작에 적응했다. ‘신’도시 아니랄까 봐 이곳의 모든 게 편리하고 깔끔하다. 외출 전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미리 부를 수 있다니, 서울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한 사치다. 모든 도로가 곧게 뻗어 운전을 싫어하는 와이프도 부담 없이 운전대를 잡는다.
3.
문제는 아무래도 마음의 적응인데, 이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일부러 선을 긋지 않았는데도 마음 한편에 ‘잠시 머무는 곳’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보니 이 도시를 대하는 내 태도가 아직은 피상적이다. 어차피 이별할 상대. 어쩔 땐 나도 모르게 깔보는 말을 던지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서울도 아닌데 뭘 바래.” 이런 말.
4.
아이는 유치원을 옮기는 사이 7세가 됐다. 부모의 우려와 달리 새 환경에 가장 빨리, 잘 적응했다. 아이는 섬약할 뿐 나약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새 유치원에는 남자 친구가 많다. 그 영향인지 원래 7세 남아가 그런지 몰라도 아이는 요즘 부쩍 힘자랑을 한다. 아빠의 힘을 확인하려는 시도도 잦다.
5.
개인적으로는 세종살이 후 몸이 좀 불었다. 매일 수많은 정부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먹고 바로 앉아 기사 쓰고, 쓰다가 불려 나가 뭔가 또 먹는 일을 반복한다. 공복 상태로 덕수궁과 청와대 길을 걷고, 걸으며 사유하고, 사유하다 메모하던 나의 소중한 루틴들이 이곳에 온 뒤로 무너졌다. 영혼 없이 갈겨쓰고 다급히 전화받다가 폭식하고 더부룩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할 때가 많다.
6.
아까 낮에 정세랑 소설을 20페이지 읽었다. 올해 들어 첫 독서라니, 부끄럽다. 독서 후에는 가볍게 푸시업과 플랭크를 했다. 모두 끊어진 루틴을 다시 이어보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됐다. 오랜만에 쓴 이 글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