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안 들어간 이유

2026년 1월 26일 월요일

by 전귀자씨

기자 생활 막 시작했을 때 하늘처럼 높아 보이던 선배가 있다. 당시 내가 취재하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배였다. 선배가 쓰는 기사는 모두가 눈여겨봤다. 선배가 쓰지 않는 기사는 뉴스 가치가 없는 걸로 받아들여졌다. 가끔 기자들 여럿 모이는 술자리가 생기면 선배는 늘 중앙 상석에, 나는 끄트머리 말석에 앉았다. 선배가 먼저 말 걸어주지 않으면 대화는 엄두조차 못 냈다.


시간이 흘러 난 14년 차가 됐고, 선배는 정년을 앞두게 됐다. 난 조직에서 쓸모를 인정받는 허리급 연차가 됐고 선배는 주요 보직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전문기자 타이틀을 달았다. 실력은 여전히 비교 불가로 선배의 벽이 높지만, 조직 관점에서 보면 난 오르막길에 있고 선배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누가 잘하고 잘못한 건 없다. 시간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오늘 내가 맡은 분야에서 큰 발표가 있었다. 기사는 시의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종합 1면 톱기사로 배치됐다. 이런 날은 보통 편집국에 들어가 저녁 늦게까지 데스크 부장 옆에서 마감하기 마련이다. 1면 톱기사는 해당일 신문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예민해지고 평소보다 더 잘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런 때는 부장 곁에서 질문에 신속히 대답하며 기사를 완성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런데 오늘은 밖에 있었다. 여전히 어렵지만 하늘보다는 가까워진 듯한 그 선배가 술 한잔 하자고 연락을 줘서다. 선배와의 약속 장소가 광화문 쪽이 아니라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누구보다 이 업종을 잘 아는 분이라 사실 양해를 구했으면 충분히 약속을 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한창 현역인 후배가 의도치 않게 쓸쓸함을 주는 모양새가 싫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다. 아무튼 그냥 만나고 싶었다.


준비한 기사를 올리고 뒷일은 편집국 내 동료들에게 맡겼다. 그리고는 14년 전처럼 선배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5시간 후 만취 상태로 택시에 올라 그대로 잠들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지만 기분은 좋다. 나의 시간도 유한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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