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후엔 숙취

2026년 1월 27일 화요일

by 전귀자씨

전날 폭음의 후유증이 종일 날 괴롭혔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을 실감한다. 선배를 만난 어제는 14년 전 막내 시절과 같았는데, 오늘의 숙취는 14년 전과 영 달랐다. 무쇠 같던 내 간은 어디로 갔는가. 꺾였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요즘이다.


언젠가부터 과음할 것 같은 날은 약국에서 파는 ‘묶음’을 사서 미리 복용하는 게 루틴이 됐다. 이 묶음에는 간보호제도 들어있고, 숙취해소제도 들어있다. 약사가 이것저것 묶어 1만원 가까운 가격에 판다. 실제 효과는 미미할지 모르지만 그냥 산다. 아무 대비도 안 하는 게 내 간에 더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다. 그러나 어제 같은 폭음에는 플라시보도 간보호도 다 진 듯하다.


폰을 열고 구글 캘린더를 살핀다. 매주 가볍고 무거운 술자리들이 빼곡하다. 사회생활하며 맺은 수많은 관계가 술과 연계됐다. 그런 자리에서만 뽑아낼 수 있는 순발력과 개그로 나를 소개해왔다. 나와 약속 잡고 나온 다수가 이전 술자리에서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그러면 난 또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몸을 던진다. 오늘은 이게 맞는 건가 하면서도 내일이면 다음 술자리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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