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이 된 국장님

2026년 1월 28일 수요일

by 전귀자씨

2021~2023년 세종에 상주하며 주요 부처를 취재할 당시 한 국장님과 친해졌다. 세종에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흔치 않은 공무원이었다. 고위 공직자들은 대개 학생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가는데, 그는 온 식구를 데리고 세종에 정착했다. 주택에 관심이 많던 난 국장님을 만나면 일 얘기보다는 주택살이의 장단점을 묻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2년의 세종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복귀한 뒤로는 한동안 서로 연락이 뜸했다. 그러다 내가 모회사로 파견 와 해당 부처를 다시 맡게 되면서 둘의 인연도 재개됐다. 오늘 점심에 그를 만났다. 그사이 그는 국장에서 실장으로 승진했다. 식당에 들어와 내게 다가오는 발걸음부터 악수를 청하는 손짓과 눈빛, 반갑다 말하는 억양, 외투를 벗는 제스처까지 모든 게 ‘실장’스러웠다. 뭔가 예전보다 더 당당한 느낌이었다.


국장도 민간기업으로 치면 임원에 해당하는 위치인데, 그땐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서울 학군지 대신 지방 신도시의 전원생활을 택한 그의 욕심 없는 삶 때문이었을까. 지금보다 말을 아끼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어딘가 제약적이던 그의 언행 때문이었을까. 실장 승진과 함께 다른 모든 에너지도 한 단계 끌어올린 듯한 그가 인상 깊었다.


내가 조잘조잘 떠들고 그는 묵묵히 듣던 그때를 떠올리며 나간 자리에서 이번에는 그가 이런저런 이야길 쏟아내고 나는 귀를 열었다. 어쩌면 승진과 무관하게 실장님은 그냥 내가 반가워 평소보다 더 많은 말을 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 하루였다. 이등병은 뭘 해도 어설프고 병장은 뭐든 능숙한 군 시절도 떠올랐다. 실장님의 차관 승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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