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옥철

2026년 1월 29일 목요일

by 전귀자씨

회사 선배의 장인상 부고가 떴다. 일정을 보니 조문을 가려면 오늘밖에 시간이 없었다. 장례식장은 이대서울병원. 회사 앞 광화문역에서 탑승해 발산역까지 정거장 19개 거리였다. 저녁 6시 40분쯤 지하철에 탔다. 내부가 붐비진 않았지만 앉을 자리는 없었다. 어차피 종일 앉아 일하고 나온 터라 서있고 싶었다. 버스만 다니는 동네에 살다 보니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탄 건 오랜만이었다. 문 옆에 서서 힐끔힐끔 지친 시민들의 퇴근길을 구경했다.


평화롭던 분위기는 영등포구청역에서 깨졌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내린 이보다 최소 3배는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순식간에 TV 뉴스 자료화면에서 보던 출퇴근 시간대 지옥철 풍경이 펼쳐졌다. 내부가 이미 포화 상태인데도 몇몇은 탑승을 시도했다. 그들의 전략은 뒤돌아선 채 등부터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등에 떠밀려’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 표정은 잔뜩 굳었다.


나는 그때 잠시 아침저녁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바짝 달라붙어 출퇴근해야 하는 5호선 이용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 모든 선택에 습관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나는, 이들의 이런 일상을 일단 안타깝게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 역세권을 포기하고 내 취향 따라 한적한 동네로 들어간 8년 전 내 선택이 잠시나마 돋보이는 기분이 들어서다. 어차피 각자 인생 누가 더 낫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뭐 그래서 더 내 맘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본인도 모르게 나란 사람에게 가여워진 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발산역에 도착했을 땐 내가 처음 탔을 때처럼 지하철 안이 한적했다. 쓸데없는 상상을 마친 나는 코트 깃을 여미고, 마음을 경건하게 다진 뒤 엄숙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실장님이 된 국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