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1일 토요일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 모임에서 군대에 빨리 간 편에 속한다. 결혼도 일찍 했고, 아이도 빨리 낳았다. 덕분에 많은 특혜를 누렸다. 낯선 어른의 세계로 가장 먼저 들어가는 내가 외롭지 않도록 친구들이 함께 감정 이입을 해준 덕이다.
군입대 전 내 송별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갓 스무 살이던 친구들은 나를 배웅하면서 조만간 자신들이 주인공이 될 송별회 분위기까지 미리 가늠해 보는 듯했다. 놈들은 훈련소에도 우르르 따라왔다. 겁에 질린 나와 인사하며 몇몇은 눈물까지 보였다. 내가 안쓰러워서도 울고, 자신의 차례가 두려워 울기도 했을 것이다. 친구 녀석들은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땐 돈을 모아 유모차를 사주기도 했다.
군입대와 결혼, 출산 등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다만 후발주자들은 첫 타자인 나만큼 특혜를 누리진 못했다. 군대에 가장 늦게 간 친구는 송별회를 챙겨준 이도 훈련소에 동행한 이도 없었다. 다들 직장 생활 중이거나 유학 중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가장 늦게 한 친구는 유모차 같은 선물을 받지 못했다. 다들 먹고사는 게 바쁘다 보니 선물 주고받던 문화도 어느 순간 흐지부지됐다.
생각해 보면 덕을 가장 많이 본 내가 나서서 챙겼어야 했다. 가끔이라도 총무 역할을 자처해 회비를 걷거나, 연락반장을 자처해 다 같이 모일 날짜를 뽑아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내가 꾸린 가정을 삶의 우선순위 최상단에 두고 그 외 것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으나, 날 챙겼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엔 늘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친구 하나가 작년 말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또 다른 친구는 여름에 딸이 태어난다는 소식을 전했다. 축하할 일이 쌓인 김에 모처럼 연락반장을 자처해 모임을 잡았다. 토요일 밤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 위해 한남동에 나간 건 백만 년 만이었다. 나까지 여섯이 모여 근황을 묻고 지난 추억을 공유했다.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내 이등병 첫 휴가에 맞춰 모였던 스물한 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 1순위던 시절은 끝났지만 가끔씩 오래 보는 자리는 만들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모임도 내가 주선할 참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