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아이스크림 먹방

2026년 2월 17일(화)~20일(금)

by 전귀자씨

작년 7월 모회사로 파견 와 7개월 동안 찐하게 일했다. 불러준 회사와 보내준 회사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해 부담이 컸다. 수습기자 시절 이후 이렇게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성실하게 산 시기가 또 있을까 싶다. 뜨거운 7개월을 보낸 후 얻은 9일의 장기 휴식은 그래서 의미가 남달랐다. 이번 연휴 기간에 떠난 3박 4일의 제주 여행이 유난히 특별했던 이유다.


장모님도 여행길에 동행했다. 우리는 큰 렌트카를 빌려 나흘 동안 주상절리와 용머리 해안, 성산 앞바다, 테마파크, 전통시장, 여러 맛집과 카페를 누볐다. 장모님이 아이를 봐주신 덕에 와이프와 둘이서 제주 골프도 즐겼다. 재충전 제대로 했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봤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오른 건 주상절리도 용머리도 아닌, 장모님의 아이스크림 먹방이었다. 여행 기간 묵은 리조트 내 편의점에서 아들과 사 왔다가 남긴 아이스크림들이었다. 넉넉하게 사온 탓에 떠나는 날까지 숙소 냉동실엔 뜯지 않은 아이스크림 3개가 남아있었다.


장모님은 두고 가기 아깝다며 전날 새벽엔 투게더를, 다음날 아침엔 월드콘을 드셨다. 아내는 아침 공복부터 당충전에 나서는 친정엄마를 보며 질색했다. 장모님이 당뇨약을 드시기 때문이다. 딸은 그냥 놔두라 짜증 내고, 엄마는 이걸 사놓고 왜 남기냐 반문했다.


장모님은 아이스크림을 드시며 손주에게는 반쯤 남은 제로콜라를 마저 먹으라 하셨다. 아들은 조르지도 않은 콜라 승인이 느닷없이 난데 들떠 컵을 꺼내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콜라냐는 와이프 불호령에 컵을 도로 내려놨다. 나 역시 그 순간엔 와이프처럼 장모님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입도 짧은 분이 꾸역꾸역 입속으로 아이스크림을 밀어 넣는 모습을 보며 ‘왜 저러시나’ 했다.


하지만 곧 나는 저 고집 뒤에 숨은 습관을 존중해야 한다고 느꼈다. 부족한 시절을 건너오며 몸에 밴 70년 생활 방식,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와이프도 그걸 알기에 엄마 건강 걱정에 짜증은 내도 그 이상 어떤 액션을 취하진 않았다. 아무튼 다음 여행 때는 간식을 사더라도 인원수에 딱 맞춰서 먹을 만큼만 사가야겠다. 첨부터 내가 적당량을 사가면 될 일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귀에 난 털을 내가 볼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