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제 뜻은 그게 아니라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by 전귀자씨

차를 몰고 여주까지 갔다가 낮술 할 일이 생겨 대리기사님을 호출했다. 70대 중반인 내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기사님이 오셨다. 젊은 기사님들과 달리 정장에 구두, 그 위로 코트와 머플러까지 차려입은 멋쟁이 신사였다. 아버지 연배에 깔끔한 복장, 젠틀한 태도를 마주하니 자연스레 나도 예의를 차리게 됐다.


술을 제법 마셔 잠들 가능성에 높았다. 그리고 잠들면 코를 골 것만 같았다. 아버지 같은 기사님 옆자리에 앉아 드렁드렁 코 골고 자면 안 될 것 같아 차키를 드리고 뒷자리로 갔다. 차가 출발하고 10여분쯤 흘렀을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중간에 잠시 깼을 때 차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밀폐된 차 안에 술냄새가 가득 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을 살짝 열었다. 2월답지 않게 포근한 하루였다. 시원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상쾌한 공기를 맞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잠이 들었다.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도착을 알리는 기사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감사하다 인사드리며 운전석 쪽을 보니 기사님은 열시트(엉따)를 켜놓고 계셨다. 난 시원하다 생각한 바람이 어르신에겐 칼바람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젠틀한 코트와 머플러도 이날 날씨에 걸치기엔 꽤 두꺼웠다.


주차를 마친 기사님이 차키를 주고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잠시 그에게 빙의 돼보기로 했다. (원래 쓸데없는 상상을 잘하는 편이다.) 내 상상 속에선 새파랗게 젊은 아들뻘 녀석이 만취 상태로 차키를 맡기고 뒷자리로 가더니, 추워 죽겠는데 창문까지 열어놓고 잠만 쿨쿨 잔 걸로 묘사됐다. 내 나름은 다 배려였는데 상대에겐 꼭 그렇지 않았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의 안전운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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