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동의 추억

2026년 2월 22일 일요일

by 전귀자씨

아들이 아장아장 걷던 2~3살 때 서부이촌동에 전세로 잠시 살았다. 그전까진 무악재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유모차 끌고 언덕 내려가는 게 너무 무섭다는 와이프 말에 전세 연장 없이 옮긴 동네가 서부이촌동이었다. 여의도로 출퇴근하던 시절이라 사실 1순위 후보지는 마포였다. 그러나 전세 가격이 우리 부부 가용 예산 범위 밖이라 포기해야 했다.


아예 여의도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시범, 대교, 목화 등 70년대 지어진 노후 아파트 전세가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의도에서 둘러본 매물들은 인테리어 없이 원형 그대로 낡아 어린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내키지 않았다. 와이프와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을 밥 먹듯 했다. 서울 끝자락이나 외곽으로 나가는 건 내가 싫었다. 내 집도 아닌데 출퇴근까지 힘들 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 전세가 아니라 매매를 알아봤어야 했다.


아무튼 여러 동네를 둘러보다가 만난 서부이촌동 아파트는 예산 범위 내에서, 평지면서, 여의도 접근성(한강대교)까지 좋았다. 심지어 리버뷰였다. 허허벌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기대감에 매매가는 동부이촌동과 맞먹었지만, 제대로 된 카페 하나 없는 척박한 생활환경 탓에 전세가는 낮았다. 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 덕에 비록 남의 집일지언정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한강뷰에 살아본다며 들떴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부이촌동 살 때는 집 앞에 뭐가 너무 없다 보니 유모차 끌고 종종 동부이촌동으로 넘어갔다. 여유 넘치는 부촌 속 카페에 앉아 놀며 우리 가족도 이 동네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맞다 내 것이 아니었지’ 하며 현타 한 번, 서부이촌동 아파트 들어가며 ‘아 맞다 여기도 내 것 아니지’ 하며 현타 두 번, 연속타 두드려 맞던 서민의 추억도 생생하다.


오늘 일이 있어 모처럼 동부이촌동에 갔다. 와이프가 전화로 미리 주문해 둔 초밥 픽업해 차에 싣고, 잠시 큰 길가로 나와 혼자 거닐었다. 유모차 속 볼살 통통했던 아들 바라보며 행복 만끽하던 그 시절 저녁 산책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이번엔 현타는 없고 그리움만 차올랐다. 지나고 보면 모두 찬란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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