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통일의 시대

by 이인규

마침내, 지리산 정착촌 통일의 시대가 열렸다.

이에 화답하듯 지리산 중심부를 둘러싼 반구형 막이 눈에 띄게 엷어지고 있었다. 특히 중심부 하늘 쪽은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걸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평화마을 정착촌 사람들은 너도나도 입을 댔다.

“저것 봐. 하늘에 구멍이 뻥, 하고 뚫렸잖아.”

“그래, 하늘이 이리 푸르게 시린 줄 오늘 처음 알았네.”

그런데 그중 평소에 걱정이 많은 마을 주민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이게 경사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일까?”

“에이, 여기서 뭐가 또 나빠지려고? 그냥 좋은 일로 치부함세.”

그러고 보니 반구형 막을 형성하던 방사성도 농도가 확연하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난리가 났던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공기와 바람이 통하였고 햇볕도 더욱 잘 들어오면서 투명해졌다. 무엇보다 하늘 쪽으로 뚫린 구멍을 통해 강한 햇볕과 바람이 들어왔는데, 이를 잘만 이용하면 농사짓기와 풍력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을 정도였다.

율도는 지리산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위해 통일이 되자마자, 기존 정착촌의 원로들과 회의를 열었다. 원탁 중심부에 율도와 책사 김이 자리했고, 시계방향으로 북쪽 마을, 서쪽 마을, 남쪽 마을 그리고 부촌 마을 원로들이 자리했다. 책사 김이 사회를 보며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맨 먼저 북쪽 거인 마을 원로가 대답하였다.

“각 마을로 통하는 도로가 가장 중요하지요.”

두 번째는 서쪽 좀비 마을이었다.

“도로도 중요하지만, 이동 수단도 중요할 것 같네요. 이를테면 기존에 사용하던 동물 외에 바퀴 달린 수레 등 말입니다.”

세 번째는 남쪽 자웅동체 마을이었다.

“제가 보기엔 중심부 마을 안에 물물교환을 위한 장터와 병원 그리고 학교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옆에서 누군가 덧붙여 말했다.

“좋은 의견입니다. 거기에다 회의를 위한 마을 회관 건립도 있어야겠지요.”

이 모든 의견을 율도는 잠잠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이번에는 부촌 마을의 원주민이 말했다.

“농사짓고 추위를 이기려면 에너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부촌 마을 원주민의 말에 율도가 끼어들었다.

“그건 곧 해결될 겁니다. 우리 평화마을에서 에너지 분야에 대해 꾸준하게 연구하신 분이 있거든요.”

율도의 말에 모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분이 누구신 데요?”

“평화마을 대체에너지 연구소 소장이신 한기백 소장님입니다. 조만간 그의 결과물을 보실 겁니다.”

회의가 끝날 때쯤 율도는 책사에게 오늘 회의록을 모두 기록하라고 지시하였고, 이 모든 것은 단계별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지리산 대체에너지 한기백 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을 공동회의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소장은 율도를 비롯한 각 마을의 유력 인사들을 자신의 연구소에 초대했다.

‘소장님이 드디어 완성하셨군.’

율도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연구소로 달려갔다. 마침내 이곳에 들어온 후로 정말 열심히 연구했던 한 소장은 자기 결과물을 공개했다.

“뭐야? 뭐야?”

“이 희한한 기계는 도대체 뭐지?”

그건 바로 풍력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연 발전기’였다. 본체와 연결한 조롱박 모양의 대형 물수집기 및 관도 여러 개 있었다.

‘와아!’

이를 본 율도와 마을 사람들은 감탄을 쏟아내었고, 한 소장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평생을 연구한 자신만의 결과물이었다.

일주일 후, 평화마을 뒤편 언덕에서 ‘연 발전기’ 시험발사가 있었다. 그전에 율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난리 전에 사용하던 전선을 마을 회관과 각 가정에 이어놓았다. 마을 회관 안엔 대형 냉장고와 에어컨 등 전자제품이 있었다. 연 발전기가 성공한다면 이것들이 돌아갈 것이었다. 그곳엔 평화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작년에 복속한 부촌 마을, 거인 마을, 좀비 마을, 자웅동체 마을의 유력 인사도 있었다.

드디어 지리산 정착촌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한기백 소장은 행글라이더에 매달은 연 발전기를 띄웠다. 그러자 이내 그것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급속하게 올라갔다. 마침 구멍 뚫린 하늘에서 강풍이 내려오자, 연 발전기는 풍차를 돌리듯 빙빙, 돌아갔다.

척척척!

“저것 보세! 저, 거대한 기계가 하늘에서 돌고 있어.”

윙, 윙, 위이잉 ~.

“정말 신기하다. 소리도 엄청 큰데?”

연 발전기와 연결된 줄에 장력이 생기면서 에너지가 전달되자, 발전기 윙, 하는 굉음과 함께 돌아갔다. 이에 율도가 언덕 아래 주민에게 마을 회관에 전자제품이 돌아가는지 확인을 지시했다. 그러자 이내 답이 왔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춤을 추면서 환호했지만, 한 소장은 이 정도는 예상한 모양이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줄에 의한 장력 에너지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연 발전기와 연결한 대형 물 수집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였다. 이것만 제대로 가동된다면 에너지 효율은 대폭 상승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부분적인 성공이었다. 대형 물 소집기마저도 굉음과 함께 급격하게 돌아가더니, 관을 통해 다른 발전기에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을 주민 대다수가 혹시나 하던 일이 벌어졌다.

“소장님! 전기가 들어와요!”

마침 집에서 대기하던 주민 한 명이 크게 소리치자,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이럴 수가! 우리 집도요!”

“이게 꿈이야, 뭐야?”

평화마을 전체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이다. 물론, 이건 한시적이었다. 아직 전기를 모으고 저장하는 기술이 부족하여, 한 시간이 지나자, 전기가 나갔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대만족이었다. 그날, 한기백 소장의 연구실엔 모처럼 돼지와 닭요리도 등장하였다.

“이제 겨울에 비닐하우스도 가능하고 더는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겠네. 역시 우리 한 소장님이야. 한 소장님 만세!”

“그뿐인가? 이제 에너지 얻는다고 애써 자전거 페달을 안 돌려도 되잖아.”

그러자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대체에너지 만세!”

이후 평화마을을 비롯한 각 정착촌엔 ‘연 발전기’가 한 대씩 보급되었다. 부분적으로나마 전기가 들어오니 지리산 사람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었다. 사람들은 밤에 한두 시간 정도 불을 밝힐 수 있었고, 그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있었으며, 가족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냈다. 그러니 지리산 사람들은 이제 더는 약탈과 습격 없이도 자급자족하며, 남은 농산물이나 물품을 거래하며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율도는 감동하여, 한 소장의 손을 꼭 잡았다.

“소장님, 축하드려요. 결국, 꿈을 이루셨네요.”

“모두 자네와 마을 사람들의 성원 덕분이자. 이제, 네 아버지에게 더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되겠다. 하하.”

말을 마친 한 소장은 ‘연 발전기’의 성능향상을 위해 다시금 연구실의 불을 밝혔다.

그렇게 꿈같은 봄날을 가고 여름이 찾아왔다.

그날, 율도는 꽃비와 함께 자웅동체 마을에 회의차 들렀다. 그런데 눈앞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게 뭐지?”

율도가 당황하자 꽃비도 길게 목을 뺐다.

“그러네요. 물이 엄청나게 빠져 있어요.”

그때 자웅동체 마을과 전쟁차 이곳을 방문했을 땐 마을 아래까지 물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이날 보니 물이 얼추 빠져 있었고, 멀리 섬진강이 보였다. 맨눈으로 하늘을 봐도 방사능을 띈 반구형 막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율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꽃비를 이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는 말이잖아요.”

“갈 데가 있어?”

꽃비의 말에 무심코 묻던 율도는 그만 아차, 했다.

“앗! 미안.”

율도의 사과에도 꽃비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찔끔거렸다.

“제가 누차 우리 엄마가 서울에 있다고 했건만. 흑.”

“미안, 정말 미안해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어쨌든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 않아요? 저기 봐요. 멀리 깊고 푸른 섬진강이 보여요. 하늘도 막이 사라져서인지 너무 맑고요.”

꽃비의 말에 율도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가 직접 저기까지 내려가 보죠. 섬진강 옆으로 서울로 향하는 길이 있다. 그래요.”

율도의 말에 꽃비가 활짝 웃었다.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까짓것, 내가 이 정도도 못 해줄 줄 알아요?”

“좋아요.”

이제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나, 하는 생각으로 율도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건 꽃비도 마찬가지였다. 꽃비는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 살아만 있다면,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율도는 회의를 마친 뒤, 마을에서 비상용으로 보관하던 방독면 두 개와 방독의 두 벌을 빌려 꽃비와 함께 악양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은 너무 참혹했다.

“이럴 수가!”

“너무 비참해요.”

주변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독했다. 율도는 꽃비 가슴에 맨 방독면 끈을 조였다. 그때 실수로 그녀의 가슴에 손이 닿았는데, 율도는 정신이 아득했다. 그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얼른 그녀에게 말했다.

“얼른 방독면부터 착용해요.”

사실이었다.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한 악양은 처참했다. 물이 빠진 곳엔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사람과 동물의 뼈 등이 악취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방독면을 써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악취 때문에 도무지 다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한참을 걸어 둘은 섬진강 변에 도착했다. 예전에 강나루였던 모양인지 부서진 팻말도 보였다. 또 안개인지 가스인지 뿌연 연기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겨우 지척에 서자 섬진강이 보였다.

“헉! 이건 또 뭐야!”

“왜요?”

율도가 다급하게 말했다.

“강 건너를 봐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강 너머에 있어야 할 산과 마을이 아예 없었다. 율도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숨을 참고 방독면을 벗었다. 그러자 끔찍한 광경이 나타났다. 섬진강은 가로로 반이 갈라져 있었는데 아래는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다. 마치 폭포가 쏟아지듯 섬진강 물은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쿨렁, 쿨렁.

“안 되겠어요. 여긴 너무 위험해.”

율도는 그곳에 서 있으면 자신들도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서둘러 꽃비를 데리고 뒤돌아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까만 해도 보이지 않던 숲 근처에 지프 한 대가 있었고 뒤엔 어떤 청년이 낑낑거리며 차를 밀고 있었다.

“저 이상한 기계는 뭐야?”

지리산에 갇혀 사느라 자동차를 보지 못한 율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에 꽃비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건 자동차라는 거예요. 서울에 있을 때 많이 봤거든요. 물론 그때 어릴 때였지만, 기억이 생생해요.”

“자동차?”

“네, 기름을 넣고 사람이 운전하면 멀리 갈 수 있어요. 서울도 가능할 거예요.”

꽃비는 서울이란 말을 해놓고선 또 눈시울을 붉혔다. 그만큼 어머니가 계신 서울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떻든 율도와 꽃비는 이런 상황에서 차가 있다는 것도 의아했고, 그들과 옷차림이 확연히 다른 사람을 본 것도 신기했다. 율도가 다가가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율도보다 나이가 든 청년이었고, 그의 옷차림은 난리가 나기 전의 세련된 옷이었다.

“어디서 온 분이죠?”

청년 역시 갑작스럽게 이곳에 나타난 율도와 꽃비 때문에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우린 이 근방에 살아요.”

“그렇군요.”

그때 꽃비가 나섰다.

“차가 빠진 모양이네요.”

“네, 비가 와서 그런지 깊은 진흙탕에 빠졌습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율도와 꽃비는 그를 도와 차부터 빼주었다.

“감사합니다.”

청년은 차를 빼자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댁은 어디서 오는 길인가요?”

꽃비가 무심코 청년에게 묻자, 그에게서 놀라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서울이요.”

“네?”

청년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는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오던 중이고, 섬진강 쪽 다리를 거의 건널 즈음, 갑자기 큰 굉음과 함께 다리가 무너져, 죽을 힘을 다해 차를 몰다 보니 이곳에 온 거라 하였다. 그때가 오늘 아침이었다. 청년은 밤새 달려왔기에 일단 잠부터 잤다고 했다. 수년 만에 바깥사람을 만난 율도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꽃비는 서울이란 단어에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은 어때요? 거긴 여기처럼 하늘에 반구형 막이 없나요? 아니, 모두 무사한가요?”

꽃비는 청년에게서 서울이란 단어를 듣자, 아무런 말이 막 나왔다.

“반구형 막?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얼마 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여 서울과 수도권 하늘은 화산재 먼지로 뿌옇고, 이 화산재가 태양 빛을 막아 평균 기온이 엄청나게 낮아졌습니다.”

“네? 화산 폭발요? 백두산이라면 북한에 있는 우리나라 최고 높은 산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때 꽃비가 나섰다.

“서울에 아직 어머니가 살고 계시거든요.”

율도의 말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사시는 동네가 어딘데요?”

“강남, 청담동이에요. 아직 이사 가지 않았다면.”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은 곳에 사시네요. 저도 서울 출발 전에 그 일대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술자리를 가졌는데.”

꽃비는 청년이 불과 며칠 전에 자신이 살았던 동네에 다녀왔다는 말에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네, 물론 어릴 적 기억이지만, 그곳엔 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꽃비는 청년이 서울에서 왔다면, 자신 역시 서울로 돌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웠다.

“참!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커피 한잔 씩 해요. 마침 휴게소에서 많이 사 왔거든요.”

청년은 차 트렁크를 열더니 캔 커피 세 개를 꺼내왔다. 율도와 꽃비는 전혀 먹어 보지 않은 음료가 청년이 깬 뚜껑을 따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마셨다.

“서울 이야기 더 해주세요.”

꽃비가 청년에게 조르자 그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싶어 난감했다. 그러더니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모두 쏟아냈다.

청년의 이야기는 그때 난리가 난 때부터였다. 그때, 지진으로 동쪽의 고리, 서쪽의 영광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하였지만, 서울 등 수도권은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남쪽의 피해가 워낙 커서 정부가 나서서 복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정부는 남부 지방을 ‘복구 불가능 지역’으로 선포하고 남쪽과 인접한 중부 지역 공공기관과 주민들, 기관 시설 등을 수도권으로 흡수하는 한편, 남부 지방을 아예 폐쇄하였다.

“폐쇄요?”

율도는 그의 말을 듣고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이전에 아버지와 한기백 소장에게 들은 것과 같이 난리 전에도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은 나머지 지역을 무조건 ‘지방’이라고 규정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무시하고 배제하였다. 그렇다 보니 지방은 점점 뒤떨어지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종국에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경남, 부산, 울산 지역에 사는 젊은이들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 말한 청년은 지리산 동쪽에 사는 부모님을 찾으러 온 거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부모는 율도도 아는, 부촌에 사는 원주민이었다.

율도는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난리(원전 붕괴)는 전 정부에서 원전을 폐기하는 정책을 세웠지만, 이걸 거부한 현 정부의 책임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는 구조하러 오긴커녕, 남부 지방을 복구 불가능 지역이라 선포하고 아예 폐쇄한 셈이었다. 율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무 화가 치밀고 어이가 없는 정부와 서울 및 수도권 주민들의 처사였다. 하지만 율도는 상황을 더 알고 싶어 참기로 하고 현재 서울의 구체적인 사정을 물었다.

“그럼, 난리 후의 사정은 어때요?”

그러자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힘들어요. 이제 서울은 권력과 힘과 돈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말았어요. 게다가 백두산 화산 폭발 영향으로 가진 사람들이야 집에 고성능 공기 청정기 등을 설치하지만, 서민들은 돈이 없어 이마저도 힘든 실정입니다.”

이번엔 꽃비가 물었다.

“그쪽 기후는 어때요? 예전과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한 4계절인가요?”

꽃비는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보낸 계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뇨. 여름과 겨울, 두 개뿐입니다. 게다가 백두산 화산 폭발로 그나마 여름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건 이곳 지리산이나 서울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율도와 꽃비는 그가 모는 지프를 타고 평화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곤 그의 소원대로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고 성대한 잔치도 열어주었다. 그러자 청년은 고마움의 대가로 자신의 지프를 마을에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하였다. 마침 지프 안에 상당량의 기름이 따로 비축되어 있었다.

잔치는 밤을 넘어 새벽까지 진행되었는데, 이제 곧 마감할 시간이 되었다. 율도는 마당에 세워진 차를 보고 꽃비에 물었다.

“차가 있어도 운전할 줄 모르는데 이게 필요할까?”

그러자 꽃비가 명쾌하게 말했다.

“운전은 배우면 돼요.”

“누구에게요?”

“저 청년분이나 아니면 한 소장님이 계시잖아요.”

꽃비는 이리 말하면서 율도의 팔짱을 꼈다.

“우리 산책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율도는 피곤한 새벽녘에 꽃비가 왜 산책을 제안하는지 몰랐다. 그러다 유난히 눈시울을 붉히는 그녀를 보고, 이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인 줄 알았다. 마침, 숲길도 밤새들의 울음으로 적막감이 들었다.

“우리, 서울에 가면 안 돼요?”

아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율도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부탁에 가슴이 먹먹했다.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럼요, 최근 들어 꿈에도 보여요. 어릴 때 본 모습이라 여전히 젊고 예쁜 얼굴이었죠.”

일전에도 말한 바 있는 꽃비의 어머니를 찾으러 서울에 다녀오자는 부탁이었다. 앞으로 자기 장모가 될지도 모르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율도에 서울은 낯선 도시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역이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리산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 솔직히 두렵네요.”

“두렵긴요. 아까 청년분 말하는 것 다 들어보지 않았어요? 그가 지프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면, 율도 씨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예요.”

율도는 꽃비가 얼마나 애절하게 부탁하는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좋아요. 시간을 좀 주세요. 먼저 한 소장님께 운전부터 배울게요. 그런 후, 결심할게요.”

그날 아침부터 율도는 한 소장과 청년에게 운전을 배웠다. 워낙에 운동 신경이 좋고 물건 다루는 일에 익숙한 율도에게 운전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율도가 가장 난감해하는 것은 바깥세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에 가려고 마음먹은 것은 한 소장의 강력한 권유와 청년의 상세한 설명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율도가 생각하기에 교사, 환경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예언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설정한 이상 사회인 ‘율도국’에서 따온 것이나, 원자력 발전소 붕괴를 예상하고 지리산으로 온 것, 이후 ‘새 세상’이 온다는 확신은 아버지의 예언이자, 율도에 부여하는 유언이었다.

아버지는 임종할 때 율도의 손을 잡고 두 가지를 부탁하였다. 첫째, 혼탁한 지리산 정착촌을 통일할 것과 둘째, 새 세상에서 새로운 이상 사회를 네 힘으로 열 것이었다. 첫째 유언은 이미 이루었으므로 새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선 서울 답사도 필요한 것 같았다. 율도는 그날부터 청년에게 단기간에 서울에 관한 교육을 받았고, 서울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을 안내받으면서 서울행을 준비하였다.

“잘 생각하였습니다. 서울에 갔다 오는 것도 중요합니다. 앞으로 큰일을 하려면 큰 세상부터 보고 배워야 하니 말입니다.”

책사 김이 율도에 힘을 실어주었다.

“제가 없더라도 마을을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지리산은 통일이 되었잖습니까.”

마침내 일주일 후, 율도는 꽃비를 태우고 청년이 말한 서울로 가는 국도로 향했다. 여수에서 하동 쪽으로 넘어오는 섬진강 다리는 지진으로 붕괴하였으므로, 율도는 섬진강을 따라 위쪽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저기 좀 봐요.”

“세상에!”

그런데 가는 곳마다 매우 처참했다. 구례와 남원, 전주, 대전까지는 한 마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였다. 빌딩과 아파트 등 건물은 파괴되어 방치되었고, 곳곳의 도로는 유실되었으며, 자욱한 안개와 연기가 아직도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도시의 빌딩이네요. 이렇게 큰 건물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꽃비는 율도가 지나갈 때마다 감탄하는 걸 보고 우스운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전부 어디로 갔을까요?”

“난리 후, 도저히 저곳엔 살 수가 없어 위쪽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율도는 꽃비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청주를 지나 천안에 다다르자, 전체 분위기부터 달랐다. 특히 화산재로 인해 하늘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여기부터는 도시의 면모가 보였고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모두 마스크나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밥을 먹으러 시내에 들어서자 율도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도시는 전쟁 후처럼, 낡았고 사람들의 표정엔 웃음이 없었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 화산재가 날려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꽃비 씨, 빨리 차에 타요.”

“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엉망이네요.”

율도는 정차를 포기하고 목적지인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은 더 충격이었다. 도로 입구마다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그곳에도 헐벗은 사람들이 차가 설 때마다 구걸하고 있었다. 그들을 떼어놓느라 군인들이 험한 욕과 함께 심지어 폭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청년에게 미리 말을 들은 율도는 경비 중인 군인에게 봉투를 쥐여주었다. 그러자 그 군인은 만연의 웃음을 띠며 신분증도 검사하지 않고 통과시켜 주었다.

아침 일찍 평화마을에서 출발하였지만, 꽃비가 기억하는 그녀의 집에 도착한 건 늦은 밤이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그녀가 그 집을 기억한 건, 그때 마충기에 잡혀갈 때 반드시 돌아오리라 하며 약속했던 절박함 때문이었다.

“여기예요.”

“확실해요?”

“그럼요,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제가 살던 곳을 밤마다 꿈으로 꾸었거든요. 여기가 확실해요.”

허름한 단독주택이었다. 밤이었음에도 그녀는 엄마와 함께 2층에 살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율도와 꽃비는 용기 내어 1층 주인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그러자 방금 잠이 깬 노파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다 꽃비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넌, 넌 꽃 … 비?”

“네, 맞아요. 할머니. 아직 여기 계시네요.”

꽃비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노파는 꽃비를 붙들고 한참을 울더니, 어머니 역시 언젠가 네가 올 줄 알고 여태껏 이사 가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가요? 정말요?”

“그럼, 한시도 널 잊은 적이 없어.”

그 말에 꽃비는 마치 자지러지는 듯한 울음을 토해내었다.

“어디 계시는가요?”

“네가 어릴 때 하던 장사를 계속하고 있어.”

“그 식당요?”

“그래, 어디인 줄 알지? 얼른 가보렴.”

그녀의 어머니는 청담동에서 조그만 해장국 집을 하고 있었다.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차를 몰고 근처로 왔을 때, 율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곳은 주위 건물은 밤인데도 네온사인이 반짝거렸고 부유해 보이는 취객들과 잘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게다가 여기는 노숙자도, 걸인도 없었다. 그야말로 서울은 빈부격차가 큰 도시라고 율도는 생각했다.

“엄마!”

“아까 주인집 할머니에게 연락받았어. 네가, 우리 꽃비가 정말 살아있었구나.”

모녀는 한참을 껴안고 울고, 또 울었다. 옆에 있던 율도 역시 괜스레 눈물이 나와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이 학생은 누구야?”

어느새 정신을 차린 꽃비 어머니가 이렇게 묻자 율도는 어리둥절했다.

‘학생? 그게 뭐지?’

그때 꽃비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율도 씨, 인사해요. 저희 엄마예요.”

그제야 율도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꽃비 친구, 백율도라고 합니다.”

“친구라고? 우리 꽃비에게 이렇게 잘생긴 남자 친구가 있었단 말이지?”

그녀의 말에 꽃비가 난감했다.

“남자 친구는 아니고요. 그냥 제가 사는 마을의 촌장님이세요.”

“뭐? 이렇게 어린 친구가 마을 이장이라고?”

“엄만, 참! 이장이 아니라 촌장이라니까요. 그것도 지리산 공동체 마을 촌장요.”

“알았어. 알아. 어쨌든 반갑네요. 잘생긴 총각.”

율도는 그녀의 어머니가 부른 호칭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학생? 총각? 이런 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마침내 꽃비는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났다. 그날 밤, 식당은 영업을 중지하고 모녀는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고 새벽이 되자, 장차 사위가 될 율도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부터 한 달간 율도는 꽃비 어머니가 가게를 정리할 시간을 주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녔다. 서울은 그때 난리가 난 뒤, 군부와 경찰이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경찰은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설치에 대한 불만으로, 군부는 당시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시대적인 요청, RE100(전 세계 기업들의 탄소 중립 프로젝트,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2050년까지 기업이 쓰는 전력을 모두(100%)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RE)로 만들자는 협약)을 무시하고, 원전을 재가동하다 파국을 맞은,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함을 빌미로 거사했다고 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 역시 예전 일본 군인 출신이던 대통령의 정부와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대통령의 정부 못지않게 엉망인 정권이었다. 그래서 대다수 시민은 거의 예전 민주 정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율도는 한 달 동안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읽고 TV와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자료와 정보를 축적했다. 율도는 그때 난리 후, 정부가 지리산 사람들을 구출하기는커녕, 그대로 방치한 것에 대한 분노와 군사정권의 폐해로 인한 민간정부 이양 문제 그리고 빈부격차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다.

다행히 서울과 수도권엔 그 옛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과 시민단체가 존재하였고 양심적인 지식인과 제대로 된 정부를 구성할만한 정치인, 환경 문제에 관한 올바른 가치를 가진 운동가 무엇보다 변화를 바라는 대중들이 있었다. 율도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보았다. 율도는 서울에 있을 때 그들이 주최하는 강연에 참석하였고, 그들과 연대하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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