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반란

by 이인규

마침내 지리산을 떠난 지 한 달이 되던 때, 율도는 꽃비와 그녀의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율도는 그동안 마을에 무슨 일이 없었는지 궁금하였지만, 한기백 소장과 책사 김을 비롯한 충직한 부하들이 있는 한, 별일이 없을 거로 생각하였다. 그런데도 전날 밤, 율도는 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마을 근처 폭포 주변이었다.

주위에 온통 철쭉이 하얀 눈처럼 피어있었다. 고운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든 소녀가 나머지 손으로 치마 한쪽을 위로 당기면서 걷고 있었다. 소녀는 고운 모래밭을 사뿐히 지나, 기암절벽을 타고 폭포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부채를 부쳐 땀을 식히고 탐스러운 철쭉이 보이면 꼭 향을 맡아보았다.

그러던 소녀가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소녀는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혀 바람을 마시면서 대지의 기운을 빨아드리고 있었다. 잠시 후, 소녀는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하며 소리를 했다.

적벽가의 한 구절이었다. 판소리를 잘 알지 못하는 율도였지만, 소녀가 소리하는 동안, 너무 애절하고 절절하여 마치 자신이 그때로 돌아가 조조에 대한 조롱과 원망을 쏟아내는 심정이 되었다. 소녀는 바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떠 있었다. 그녀의 소리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리고 하늘의 구름도 불러모을 만큼 낭창했다. 아아, 율도는 그녀의 소리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그런데 소녀 뒤로 시커먼 물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치곤 체격이 왜소했고 얼굴이 쥐같이 생긴 사내였다. 율도가 누구인지 자세히 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내의 얼굴은 구름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아직 소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지척으로 다가온 사내가 그녀를 뒤로 안았다. 그런데 이 순간부터는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안 돼!”

율도는 소리쳤지만, 당연히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놀란 소녀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사내는 그녀를 편편한 바위 위로 눕혀 희롱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옷고름이 풀리는가 싶더니, 사내의 얼굴이 확 돌아갔다. 소녀가 있는 힘을 다해 사내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러자 사내는 무자비하게 소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율도는 너무 안타까워 고함을 질렀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무 효과도 발휘할 수가 없었다. 힘에 부친 소녀가 누운 채로 널브러져 아무 저항을 못 하자, 사내는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소녀는 너무 고통스러워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옆으로 고개를 돌린 소녀의 눈과 율도의 눈이 마주쳤다. 소녀의 눈은 분명히 말을 하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아아, 안타까운 일이었다. 율도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 율도는 도저히 소녀를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지만, 소녀가 계속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한순간이었다. 갑자기 장면이 무성에서 유성영화로 바뀌면서 사내의 ‘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율도는 얼른 눈을 고개를 돌렸다. 소녀의 손에는 날카로운 돌이 들려있었다. 사내는 눈 주위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소녀는 옷고름을 다시 매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소녀의 눈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눈망울은 처절했고 허무했다.

다시 장면은 무성영화로 바뀌었다. 사내가 벌떡 일어나 소녀에게 온갖 욕을 하더니 자신이 맞은 돌을 쥐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남자를 피해 뒷걸음으로 바위 끝으로 걸어갔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앞에는 자신을 희롱한 남자, 뒤에는 낭떠러지였다. 남자가 점점 다가서자, 소녀는 몸은 흔들렸다. 뒤꿈치로 디딘 쪽 바위의 돌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곳은 아득한 폭포 밑에 못이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사내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자 남자도 주춤했다. 소녀는 결심한 듯 뒤로 몸을 젖혔다. 그 순간에도 소녀는 율도를 애틋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안 돼!”

율도는 손까지 내저으며 큰소리를 쳤으나 역부족이었다. 소녀는 바위 끝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놀란 사내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더니, 피가 줄줄 흐르는 눈두덩이를 한 손으로 가리고 줄행랑쳤다. 못에 빠진 소녀는 더는 물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철쭉 한 다발이 한참 후에 아련히 떠 있었다.

“헉! 이건 뭐지?”

놀란 율도는 꿈에서 깨면서 헛소리를 했다.

‘통일된 마당에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징조일까?’

율도는 애써 무시하려 했으나 그는 자신의 꿈이 현실감 있는 예지력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꽃비는 행복감과 충만함에 들떠 마을에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드디어 서울에서 출발한 지프는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섬진강 근처로 왔다. 이제 조금만 가면, 지리산 공동체 마을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간 여행의 고단함은 익숙한 땅에 닿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엄마, 여기서 우리 사는 곳이 멀지 않아요.”

꽃비도 고향 같은 이곳에 오자, 마음이 들뜨는지 연방 웃음을 자아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구나. 물론 네가 사는 곳은 더 그렇겠지?”

“그럼요. 엄마가 가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우중충하고 살벌한 서울보다 훨씬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 호호, 어서 가보고 싶구나.”

율도는 모녀의 정겨운 대화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꽃비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웃음이 많아졌다는 점에 감사했다. 율도는 장거리 운전 끝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피로감도 잊어버린 채 곧장 자웅동체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시면서 꽃비 어머니에게 자신이 정복한 마을 소개도 하고 싶었다. 그것도 그렇고 자웅동체 마을엔 통일 이후, 자신이 세운 촌장과 약간의 병력이 있어 그들의 환대도 받고 싶었다.

“그 마을에 가게요?”

“네, 가서 피로도 풀 겸,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가죠.”

율도는 악양 벌판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직진하였다. 여름이 가려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여름 특유의 싱그러운 향이 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을은 회남재 아래 산 중턱에 있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도 멀리 본 마을은 정말 평화로웠다. 이른 저녁밥을 지으려는지 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이들 노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율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연기가 피어오르다니. 연 발전기 사용 이후로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했건만, 이건 아직도 나무로 밥을 짓는다는 말이 아닌가?’

율도는 얼른 올라가서 사정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꽃비가 투정을 부렸다.

“아, 배고파. 우리 저곳에서 차 대신 따뜻한 밥을 먹으면 안 돼요?”

꽃비 말에 율도는 난감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여기서 먹고 가면 우리 본 마을에서 못 먹잖아요. 조금만 참아요. 본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분들이 우리를 위해 만찬을 베풀어 줄 겁니다.”

“그래, 그건 율도 총각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무리 아는 마을이라 해도 셋이나 되는 사람이 불쑥 찾아가서 밥 달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꽃비 어머니의 부드러운 타이름에 꽃비가 입술을 삐죽였다.

“알았어요. 너무 배고파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율도는 그녀의 말에 크게 웃으며 마을 진입로에 들어섰다. 이제 오른쪽으로 방향만 틀면 마을 입구였다. 율도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오른쪽으로 커브를 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이익!

놀란 율도는 급정거하고 말았다.

“뭐야?”

놀랍게도 지프 앞에는 죽창을 든 여성 세 명이 가로막고 있었다. 율도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곧바로 여성 중 한 명이 험악한 얼굴로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일전에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누구냐?”

“난 지리산 공동체 마을 촌장, 백율도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

율도가 신분을 밝히자, 여자는 나머지 한 명을 불렀다.

“이 자를 아는가?”

“예전 평화마을 촌장이잖아요.”

“그래? 그러면 빨리 촌장님에게 알려. 그자가 왔다고 말이야.”

그리곤 여자는 뾰쪽한 창으로 율도 일행에게 어서 내리라고 위협했다. 어이가 없는 율도가 여자에게 소리쳤다.

“내가 백율도라니까! 어디서 나를 위협하고 그래? 촌장 어디 있어? 당장 불러와.”

그런데도 여자는 창을 겨누며 눈짓으로 내리라고만 했다.

“지금 모시러 갔잖아. 그러니 어서 내리기나 해. 그리고 뒤에 여자 둘도 빨리 내려.”

여자의 위협적인 태도에 율도는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렸다. 이어 겁에 질린 꽃비와 어머니도 따라 내렸다. 그러자 나머지 창을 든 여자가 가세하여 셋을 몰아세웠다.

“앞장서! 마을로 압송하겠다.”

이제 율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들이, 누구에게! 이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 하면,”

하지만 율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우두머리 여자가 창으로 율도의 머리를 친 것이다.

‘욱!’

율도는 그 한방으로 바로 자리에 쓰러졌다.

“율도 씨!”

놀란 꽃비가 율도에게 다가왔지만, 창을 든 여자가 그녀를 발로 차버렸다.

퍽!

“이년아! 똑바로 걷기나 해.”

꽃비는 앞으로 쓰러지면서도 할 말을 했다.

“여보세요? 이분이 누구이신지 정녕 모르세요? 이분은 지리산 공동체 마을 촌장님이란 말씀이에요. 도대체 당신들이 뭔데 이분을 이리 응대하시는 건가요!”

그때 창은 든 여자가 비웃듯이 말했다.

“알아. 예전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어린놈이잖아. 잘 알고 있어. 뭐? 지리산 공동체 마을 촌장? 그런데 지금은 아냐. 왜냐하면, 그건 그때 일이거든. 자, 빨리 일어나서 걸어!”

여자의 말을 들은 율도는 뭔가 일이 크게 생긴 것으로 파악했다.

“알았소. 원하는 대로 할 테니, 제발 그녀를 때리지 마시오.”

율도는 일단 마을 안에 들어가서 촌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사태를 얼른 해결하고 싶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자, 출발!”

율도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죄인처럼 앞장서서 걸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이내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그들은 율도를 애써 모른 척하였다.

“이봐요, 아주머니! 저 아시죠?”

말만 붙여도 사람들은 도망가기 급급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꽃비도 불안하여 어쩔 줄 몰랐다.

“조금만 참읍시다. 촌장을 만나면 다 해결되겠지요.”

율도는 이 수모가 무슨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꾹 참고 마을 회관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우두머리 여자가 율도부터 자리에 세웠다.

“모두 꿇어! 조금 있으면 촌장님이 나오실 거야.”

“뭐? 꿇으라고? 야! 이건 아니잖아.”

퍽! 어억!

율도가 항의하자 가차 없이 몽둥이가 날아왔다. 놀란 꽃비와 어머니는 자동으로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때 마을 회관 입구가 웅성거렸다.

“촌장님 나오신다. 모두 고개 숙여!”

‘이런!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도대체 촌장이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했으면 총괄 촌장인 내가 이런 꼴을 당할까.’

율도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촌장의 등장에 맞추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앗! 이게 뭐지?’

율도는 촌장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촌장은 그때 자기가 임명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놀랍게도 젊은 여자였다.

‘이럴 수가!’

그런데 여 촌장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율도의 뺨을 때렸다.

‘철썩!’

손아귀 힘이 얼마나 세던지 율도는 자리에서 1m나 날아갔다.

어이쿠!

“율도 씨!”

꽃비의 자지러지는 소리와 함께 율도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

“데리고 와!”

그녀는 부하에게 명령하더니 옷소매를 걷었다. 이어 정신이 든 율도가 그녀 앞에 끌려왔다.

“네놈이 백율도냐?”

말투도 아예 반말이었다. 욱, 하는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율도는 참기로 했다.

“그렇다.”

그러자 이번엔 그녀의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욱, 우욱!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녀는 한동안 씩씩거리더니 말을 뱉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지?”

“모른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나 알자.”

“나는 네놈이 우리 마을을 습격하여 아수라장이 될 때 끝까지 마을을 사수하다 돌아가신 촌장의 딸이다.”

“…….”

그녀의 말에 율도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 마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단 말인가?’

율도가 잠시 생각에 잠길 때도 그녀의 말은 폭풍처럼 쏟아졌다.

“이런 날을 내가 손꼽아 기다렸다. 이 어린놈 때문에 그때 우리 마을 전사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넌 나의 철천지원수다.”

율도는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 이거 아니다 싶어 대답했다.

“그건 오해다. 그땐 우리 지리산 정착촌의 통일이 필요한 때였다. 그건 통일 전쟁을 수행하면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자 또 그녀의 손이 날아왔다.

철썩!

“미친놈! 이봐, 이놈과 일행을 당장 창고에 가둬버려!”

결국, 따뜻한 차와 밥은 고사하고 율도 일행은 바로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창고는 마을 회관 옆 축사를 개조한 감옥이었다. 그런데 이곳엔 율도 일행 외에 여러 사람이 이미 갇혀있었다. 율도가 포승줄에 묶인 채 창고 안에 들어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촌장님!”

바로 옆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율도가 임명한 자웅동체 마을 촌장이었다. 그 방엔 그 외에 평화마을 병사들도 몇 있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지도자였던 율도가 비참하게 끌려오자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이 방에 들어가!”

율도와 꽃비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짐승처럼 던져졌다. 율도는 간수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옆방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요? A 촌장.”

“면목 없습니다.”

그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허, 울지만 말고 그간의 사정이나 빨리 말해봐요.”

그러자 그는 분에 겨운 듯 더듬더듬 그간의 사정을 털어냈는데, 그 과정은 이랬다.

그러니까, 율도가 서울에 간 지 일주일이 되던 때, 갑작스러운 지진이 일어났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지진으로 천왕봉 아래 중봉에서 소규모 화산 활동이 일어나 공동체 마을 본거지인 평화마을 일대의 논과 밭 그리고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공동체 마을 본거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 예전 복속되었던 북쪽의 거인마을, 남쪽의 좀비 마을, 서쪽의 자웅동체 마을 그리고 부촌의 조폭 잔당들이 들고일어났다. 그중 핵심은 부촌 마충기의 부하였던 전직 조폭들이었다. 이들이 율도가 없는 틈을 타서 반란을 선동하면서 공동체 마을 본거지를 공격하였고, 나머지 네 마을에 있던 율도가 임명한 촌장을 축출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랬군요.”

이야기를 들은 율도는 이 모든 게, 마치 자기의 잘못으로 느껴졌다. 그때 이 네 마을을 복속한 뒤, 나머지 잔당들을 완전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율도는 그때 책사의 말을 듣지 않은 게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생각하다 율도는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 마을의 한 소장님과 책사 선생은 어찌 되었는지요?”

꽃비 역시 이 점이 가장 궁금하였다.

“무사하십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마을에 관한 장악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율도의 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군요. 무사하시다니. 좋습니다. 그런데 아까 보니 마을에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던데, 이건 혹 …….”

율도로선 아까부터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그러자 A 촌장의 한숨이 나왔다.

“지진과 화산 분출로 연 발전기 사용은 중지되었습니다. 여긴 그래도 조금 났지만, 공동체 마을엔 아직도 화산재로 하늘이 시커멓습니다. 또한, 갈라진 땅에서 연기도 마구 피어나고 있고요.”

율도의 속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아니, 지리산에, 지진이라뇨?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더군다나 중봉에서 화산이 터졌다는 말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율도와 꽃비는 가슴이 답답했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둘은 희망에 차 있었다. 특히 사랑하는 꽃비가 어머니와 상봉하여 앞으로 행복하게 살날만 기대하였는데, 이런 일은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것이었다.

“그보다 촌장님, 아직 아무것도 못 드셨죠? 자, 이거 받으세요.”

A 촌장이 감옥 앞문을 통해 약간의 음식과 물을 밀어 넣었다.

“이게?”

“별것 아닙니다. 평소 우리가 먹던 것을 조금씩 아껴둔 것입니다.”

율도가 손을 꺼내 당기고 보니 감자와 옥수수 등이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이놈들이 하루에 두 번밖에 주지 않거든요. 특히나 오늘은 첫날이어서 배식이 없고 아마 내일 아침에 줄 겁니다. 미리 속을 채워두세요.”

율도는 그에게 재차 감사함을 표시하고 이 음식을 배고픈 꽃비와 어머니에게 모두 양보했다. 대신 율도는 감옥 한쪽에서 흐르는 물을 양껏 마셨다.

한밤이 되자, 꽃비와 어머니는 피곤했는지 깊이 잠이 들었다. 하지만 율도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건 옆방의 A 촌장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가 벽을 두드린 것이다.

“주무십니까?”

“아뇨. 하실 말씀이라도?”

“혹시라도 당장 필요한 게 있으면 해서요.”

율도는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떠날 때 서울에서 대략 한 달 정도 있겠다고 한 소장과 책사 김에게 말해두었으니, 아마 그들이 자신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혹 공동체 마을 한 소장과 책사 김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지요?”

그러자 이내 그의 답이 왔다.

“가능합니다. 내일 근무할 자가 우리에게 호의적이거든요. 제가 부탁하면 들어줄 겁니다. 그런데,”

그가 말을 끊자, 율도는 뭔가 싶어 궁금했다.

“그런데 뭐요?”

“그자가 대가를 요구할 겁니다.”

율도는 대충 짐작하고 자기 옷 속 호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뇌물로 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꽃비가 일어났다.

“이거면 되겠어요?”

그녀가 내민 건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였다. 이 반지는 서울에 있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만난 기념으로 해준 것이었다.

“꽃비 씨!”

“괜찮아요. 어머니도 이해하실 거예요. 그러니 부담가지지 마세요.”

꽃비는 율도가 말을 잇지 못할 상황에서 스스로 감옥 밖으로 반지를 내었다. 이를 본 A 촌장이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촌장님께서 전할 말을 주십시오.”

율도는 행여 심부름꾼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예전 한 소장이 가르쳐준 대로 거의 암호화 된 쪽지를 썼다.

「서울에서 오늘 도착한 자웅동체 마을에 겨울이 깊습니다. 사흘 후, 봄꽃을 전해주십시오. 율도.」

율도는 꽃비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이 잘 풀리면 내가 꼭 저 반지를 찾아줄게요.”

“반지보다 얼른 우리가 여길 나갔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밤은 시나브로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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