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나의 지휘 본능을 깨우다

스프링무제공책이라니!

by 비비걸

아이돌이어서가 아니라 음악 이야기를 하면 나는 참 할 말이 많다.


중학교때 10명도 안 되는 비공식 중창반을 뽑았다. 지원하는 형식이 아닌 추천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악보도 잘 볼 줄 알아야 했고, 노래도 잘하는 아이들로 꾸려졌다. 우리들이 대단한 대회를 나가려고 학교에서 뽑는가 보다 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그냥 학교에서 구색 맞추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학교 때 생각해 보면 한 반에서 53명이 넘는 아이들이 16반까지 있었다. 그중에 뽑힌 것이면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는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데 왜 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이돌 연습생으로 뽑힐 때도 그렇고, 이때도 그렇게 뽑히는 운이 있었는가 보다 생각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학교 중창 교내대회가 있었다. “박00.” “네?” “우리 반은 네가 가르치도록 해.” 담임선생님은 나를 딱 지목하셨다.


나의 인솔 아래 “봄처녀”라는 곡으로 아이들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나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 말했다. “매일매일 끝나고 남아!” 우리 반 아이들은 하기 싫었을 법도 하고 박차고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잘 따라와 주었다.


“아무개! 너 그 파트 다시 소리 내 봐!”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뻥긋거리며 튀는 소리를 내는 아이였다. 나는 정확히 짚어냈다. 될 때까지 했다. 당연히 원성도 자자했다.


“야, 네가 뭔데 그렇게 우리를 시켜?”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야. 나도 하기 싫어!.” “그런데 해야 하는 것이면 열심히 하자!” 하면서 아이들을 이리저리 달래가면서 했다. 우리는 모두 중2 병에 걸린 아이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그렇게 엄격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대회 날이다. 전교생은 수업을 하지 않고 종일 중창대회만 했다.

심사가 끝나고 우리는 조마조마 모두가 숨죽여 상을 탈 수 있을까 기다렸다. “2학년 0반.” “와!!!!” 엄청난 탄성이 나왔고, 다른 반 아이들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넘사벽인 우리 반 실력에 입상을 모두가 예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점프를 하면서 기뻐했다.

나는 우리 반을 지휘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뿌듯했다.

곧이어, 갑자기 마이크로 울려 퍼지는 내 이름. “박00.” ‘뭐지?’ 싶었다.


전교생을 통틀어서 지휘상을 딱 1명만 주었는데 내 이름이 호명된 것이었다. 이때는 정말 나도 화들짝 놀랐다.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내가?' 하고 교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우리 반 아이들과 손을 다 마주치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짜릿하고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는 지휘할 때 온몸으로 표현했다. 내가 집에서 거울 보면서 연습했던 것도 모든 것이 기억에 선명하다. 아이들을 지휘할 때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면서 속삭이듯 표현할 때는 손을 작게 했다. 역동적으로 크게 해야 할 때는 정말 내 입과 눈과 콧평수가 다 넓어지고 모공까지 확장이 됐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춤을 추듯 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은 그냥 자동 반사 같은 나의 움직임이다.


‘아이들은 노래를 하고 나는 그것에 맞춰 춤을 춘 것이다.’ 반대인가? ‘내 춤에 맞춰 아이들이 노래를 한 것인가?’

집에 가서 선물이 무엇인지 뜯어봤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스프링 무제 연습장이었다. ‘하하하호 호호 히히히’


나에게 인생은 그런 것이다. 보상보다는 그 짜릿함, 그 무엇이다! 그런 것이 나를 있게 만드는 것 같다. 보상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보상으로 한 해를 살아낸다고 하지만, 그 보상을 위해서 꼭 휴가를 가야 하고 꼭 명품백을 사야 한다면? 그것은 나와는 먼 이야기 같다.


나는 뭔가 행위를 통해 쾌감과 짜릿함을 느끼는 그 순간, 그 찰나가 나를 만들고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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