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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Jan 16. 2019

어느 가족의 속사정

가족이라서 함께 살고 있진 않나요

여름밤,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마당 아래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인다. 불꽃은 멀리서 터져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검은 하늘을 함께 쳐다보며 펑펑 울리는 큰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 나오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법적인 절차 없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보편적인 방법 없이, 어쩌다가 하나둘씩 모여 한집에서 살고 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이 목욕을 하는 모습만 봐도 그들은 ‘가족’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기어코 파헤치고 그들의 뿌리를 찾아내 훼손한다. 그들이 ‘진짜 가족, 정상적인 가족’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그들을 ‘사기꾼, 범죄자’라며 발가벗기고 해체한다.


우리 가족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가족이 분명했다. 조용한 집에 2대의 TV 소리가 들린다. 하나는 아빠가 혼자 거실에서 보고 있는 TV 소리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안방에서 보고 있는 TV 소리다. 언제부턴가 일하지 않는 아빠는 거실에 있는 TV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퇴근 후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면 조용한 집에 2개의 높이가 다른 소리가 겹쳐 울렸다. 그럴 때면 나는 안방으로 갈지, 거실에 있을지, 내 방으로 갈지 몰라서 방황했다.


엄마는 늘 바빴고, 아빠는 혼자였다. 서로의 방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가족, 서로가 궁금하지 않은 가족. 그러나 누구도 우리 가족을 ‘가짜 가족, 비정상적인 가족’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에게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생겼다.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거주하며 생긴 5개월의 ‘기간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겠다는 목적이었으나,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말이 통하고 처지가 비슷한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약속 없이 갑자기 친구의 방문을 똑똑 두드려도 실례가 되지 않았다. 매일 함께 밥을 먹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곳은 해가 일찍 지는 탓에 낮보다 밤이 훨씬 길었다. 할 일 없는 우리는 해가 지면 영화를 보기 위해 누군가의 집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지속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을 시공간이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었다. 5개월 뒤 사라질 시한부 가족이었지만, 그래서 더 충실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5개월의 소속감은 또 다른 가족의 형태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어느 가족>의 사람들처럼, 불꽃이 보이지 않아도 불꽃 터지는 소리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를 꿈꾼다. 부모와 자식이란 이유로 서로에게 노력하지 않는 관계보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서로 애쓰고 배려하는 어떤 관계를 만나길 희망한다. 가족이라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밥을 먹고 한 공간에 모여, 살을 부비며 결국 가족이 되고 마는, 그런 ‘어느 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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