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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Oct 30. 2021

엄마는 엄마니까, 엄마다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최은영 작가 소설 <밝은 밤>을 읽고

“엄마, 나 배 좀 주물러줘.” 툭하면 체하는 나는 아플 때마다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다. “으이구, 내가 니 나이에는 애가 둘이나 있었는데. 너 언제까지 이럴래?” 백번도 더 들은 ‘내가 니 나이 때엔’으로 시작되는 엄마의 잔소리는 무시한 채, 바닥에 드러누워 온갖 아픈 척을 한다. 말은 저렇게 해도 엄마가 아픈 나를 그냥 내버려 둘 리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배랑 머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아…” 힘없는 내 목소리가 엄마 귀에 닿으면,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내 배꼽 주변을 문지르다가 꾹꾹 누르기도 한다. 체하는 건 정말 지긋지긋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지겹지 않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 엄마는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노래를 흥얼거리며 배를 주무르기도 한다. 그 순간에 잠시 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간지러움을 느낀다. 엄마는 말한다. “엄마도 누가 이런 것 좀 해줬으면 좋겠다.”


퇴근 후 어느 날,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도 엄마는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 딸은 좋겠다. 엄마가 이렇게 밥도 차려주고. 엄마도 누가 이렇게 밥 좀 차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못 들은 척 밥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튕겨냈다. 엄마는 할머니 없이 자랐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엄마를 낳은 뒤, 아들을 낳지 못해 할아버지에게 쫓겨났다고 했다. 그 뒤로 새어머니가 생겼지만, 어릴 때부터 서울에 혼자 올라와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몇 마디 문장이 전부였기 때문에,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엄마는 혼자서 자랐구나. 나는 엄마의 문장을 짧게 요약해버렸다.


주기적으로 엄마의 신세 한탄을 듣는 게 지겨울 때도 있었다. 엄마도 이제 환갑이 넘었는데, 그냥 그러려니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엄마는 어느 순간마다, 엄마 없이 자라야 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과, 엄마가 된 현재의 모습을 스스로 비교하는 듯했다. 엄마의 하소연에 나는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거기에 내 이성은 억울하다며 속삭였다. 내가 엄마 딸로 태어난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엄마가 할머니가 없이 자란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은 세대를 거친 네모녀의 이야기이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그리고 주인공 지연까지. 지연은 이혼 뒤 할머니가 있는 작은 도시 희령으로 이사를 온다. 희령에서 할머니를 통해 증조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연은 그동안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지연 입장에서만 보면, 지연의 엄마는 ‘딸한테 모진 말을 하고, 딸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차가운 엄마’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지연은 엄마의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딸을 혼자 키우는 할머니 밑에서 문제없이, 말썽 없이, 응석 부리지 못하고 자라야만 했던 어린 엄마가 보인다.


책을 읽으며 나도 엄마의 어떤 표정이 떠올랐다. 엄마는 친할머니 이야기를 종종 했다. 엄마가 미용실에서 일을 마친 후 늦게 들어오면, 아빠는 안방에서 자고 있어도 시어머니는 밥을 차려놓고 엄마를 기다렸다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피곤하지 않냐고, 힘들지 않냐고 엄마를 다독거렸다고 했다. 엄마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땐,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단순한 문장으로 엄마에 대해서 정리해버렸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니 친할머니 이야기를 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의 얼굴에는 천진난만한 행복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딸로서 받는 어렴풋한 사랑을 그때 처음 받았구나. 엄마는 그때 처음 어린아이가 된 거구나. 지연이 할머니를 통해 몰랐던 엄마의 상처와 슬픔을 보았듯이, 나도 엄마의 어두웠던 그늘이 선명히 보이는 듯했다.


그동안 엄마는 엄마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과거가 어쨌든 간에 엄마는 엄마니까, 엄마다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32살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13살의 내가 있고, 21살의 내가 있고 32살의 내가 있다. 엄마에게도 환갑이 넘은 엄마 말고 다양한 엄마가 있었는데, 내 눈에는 환갑의 엄마만 보였다. 새어머니에게 은연중 받았을 구박과 차별을 견뎌야 했을 애기 엄마, 아무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했을 학생 엄마, 친구들이 친정 엄마 얘기할 때, 침묵해야 했을 어린 엄마. 처음으로 자신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주며 다정한 말을 건네준 사람을 만난 과거 엄마. 그제야 엄마의 여러 가지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앞으로 종종 듣게 될 엄마의 하소연이 또 지겨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애기 엄마, 학생 엄마, 어린 엄마가 지금 현재 환갑이 넘은 엄마에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한다. 엄마도 갑자기 엄마가 된 건 아니니까.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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