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요가하기
허리를 왼쪽으로 돌리라는 선생님의 말이 들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시선의 끝에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야무지게 집게핀으로 곱실거리는 머리의 반쪽을 묶었다. 팔을 왼쪽으로 쭉 뻗는 동작을 할 때는 뒤에서 허둥거리는 엄마의 손이 거울 너머로 보인다.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엄마를 자꾸 훔쳐보게 된다.
엄마와 요가를 배우러 다닌 지 3주 차다. 요가를 시작한 계기는,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라는 유튜브를 보고 난 후부터다. 현재 하고 있는 활동들을 계획하고 관리하면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선, 내가 하고 있는 활동 리스트를 적고, 의미 점수와 쾌락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리스트들의 현재 활동 시간을 적고, 앞으로의 시간 계획을 짜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회사, 글쓰기 모임, 시 읽기 모임, 카페에서 책 읽기, 친구들과의 약속, 강아지 산책, 채식 요리… 등의 리스트를 쭉 적었다. 이렇게 적고 나자 빈칸이 보였다. 돈을 쓰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돈을 주고 체력을 사는 ‘운동’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활동이 단 한 개도 없었다. 단둘이 사는 가족인데 정말 공간만 함께 쓰고 있었구나. 그래서 엄마와 시간도 같이 보내면서, 운동도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았다. 동네 요가원이 최종으로 선택되었다.
엄마와 요가를 하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엄마의 다양한 표정이 보인다. 요가가 끝난 바로 직후엔 눈썹과 눈 근육에 긴장이 풀린 얼굴, 마지막에 손을 합장하고 인사할 때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무리 짓는 평온한 얼굴. 어려운 동작을 할 때는 자꾸 내 동작을 흰자로 힐끔 쳐다보는 얼굴. 그동안은 일하는 엄마, 밥하는 엄마, 잠자는 엄마만 익숙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는 일하는 엄마와 생활인으로써의 엄마뿐이었구나. 요가하는 엄마의 얼굴은 낯설었다.
요가하는 엄마의 얼굴을 관찰하다 보니, 엄마는 원래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평일 연속극을 볼 때의 표정이 가장 다이내믹하다. 주인공이 재벌가 시어머니에게 그동안 당한 서러움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엄마의 양 입술이 아래로 쳐진다. 고개도 끄덕끄덕거린다. 주인공의 대사 속도와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는 속도가 얼추 비슷하다. 엄마의 양 입술이 내려간 각도가 정점을 찍었을 때 웃겨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엄마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하지만 머리를 가로로 휘저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아니, 나는 이렇게 쉽게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 엄마는 나한테 상처 주는 말도 많이 했고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았잖아? 엄마가 참 괘씸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요가원에서 엄마의 짧은 팔과 다리가 허공에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 다시 나는 돌변한다. 엄마가 너무나 귀엽다.
내 마음속 엄마는 꽤 바쁘다. 괘씸한 엄마와 귀여운 엄마 사이를 뚱뚱한 엄마가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엄마가 또 귀여워 보인다. 사람이 귀여워 보이면 끝난 거라는 짤을 본 적이 있다. 귀염 지옥에 빠지면 몽땅 다 귀여워 보여 객관성이 없어져서 큰일 난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난 엄마의 귀염 지옥에 빠진 것 같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