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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Mar 15. 2019

엄마보다 일찍 죽고 싶어


대학교 동기 J는 자신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것 같아 고민이라고 했다. 세상에 저런 것도 고민이 될 수 있구나. 속으로 감탄했다. 그런 J가 뜬금없이 우리에게 물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진짜 한 번도 없는데.”


나는 땡볕 아래 언제 시들지 모르는 들꽃처럼 사는 것 같아 고민인 사람이었다. 삶의 고비라고 느끼는 순간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취약한 DNA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J에게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진짜 패배자처럼 살고 있노라 증명하는 꼴 같아 창피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우주처럼 거대하게 느껴질 때, 우리 집 강아지 별이가 죽고 없어진 후를 상상했다. 백설기에 까만 콩 세 개가 붙어있는 것 같은 순진하고 해맑은 얼굴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뱃살을 다시는 못 만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고통스러워 상상하기를 멈췄다.


이번엔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 혼자 남겨지는 상상을 한다. 어쩔 땐 아주 밉다가, 어쩔 땐 불쌍한, 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상상. 그럼 나는 혼자 어떻게 살아가지? 엄마가 없다는 사실보다 혼자 남은 나의 남은 생이 더 걱정이다. 냉기가 손 끝부터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어 생각을 멈췄다.


슬며시 다짐했다. 별이가 죽고 나면, 나도 죽어야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별이가 없다면,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엄마보다 내가 먼저 죽어야지. 엄마 없이 나 혼자서 사는 건 너무 외롭고 무서웠다. 그렇게 죽음을 비밀스럽게 꿈꿨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K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나의 꿈을 망가트리려고 했다. “야! 너 혹시 어머니한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 내가 가서 도와줄게.” K는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였고, 물론 술에 취해 있었다. 가족이라곤 엄마뿐인 내가 걱정돼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자 눈물이 덜컥 쏟아졌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부위를 K가 예고도 없이 쑥 찔러 버린 셈이었다. 아니야. 내가 먼저 죽을 거야. 속으로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삶이 버거워서 도망치는 비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 번째 생일날 결국 자살 시도에 성공했다고 한다.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책을 읽을 때 풍겨지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이상하게 좋았다. 반짝거리는 열정, 기쁨이 넘치는 삶이 아니라 진한 자기혐오, 모순으로 가득 찬 그가 오히려 빛나 보였다. 한수산 소설가는 그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를 읽는다는 것은 젊은 날의 상처다. 그러므로 그 상처가 나을 때 독자는 그를 떠난다. 다자이는 홀로 거기 있다. 어린이가 자라면 또 다른 젊은이가 다자이를 만나고… 다만, 나는 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나아가지 못한 작가라는 것을”


맞는 말이다. 젊은 날의 상처가 아직 선명해서 나는 그가 아직도 좋나 보다. 별이가 떠난 후 많이 슬프기 전에, 엄마가 떠난 후 늙은 고아가 되기 전에, 미안하지만 나는 일찍 죽고 싶다. 죽음과 상실을 겪어 아픔이 풍화되는 긴 시간을 혼자 감당할 용기가 없다. 혼자 남겨진 다자이처럼, 나는 자라지 못한 젊은 청춘으로 홀로 남겨져 있다. 언젠가 젊은 날의 상처가 희미한 흉터로 변한다면, 나는 그를 버리고 훌쩍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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