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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Apr 04. 2019

다정이 별것 아닌 게 될 때

다정하고 따뜻한 것들엔 영 면역이 없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계란을 꺼냈다. 치마 속에 계란을 넣어 손으로 감쌌다. 그렇게 해도 병아리는 나오지 않는다고 엄마가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지만, 나는 병아리를 꼭 부화시켜 보고 싶었던 고집 센 아이였다. 한참을 만지작 거리다 갑자기 퍽 하고 계란이 깨졌다. 조금 전까지 껍질을 부리로 콕콕 찍으며 곧 병아리가 나올 것 같았던 따뜻한 계란이 순식간에 비린내를 풍기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되어버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잘하는 짓이다.” 엄마는 인상을 쓰며 소리 질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뭔가를 잘못할 때마다 엄마는 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때가. 밥을 먹을 때 빨간 양념이 튀어 옷이 다홍색으로 얼룩질 때도, 컵을 떨어트려 바닥에 물이 흥건해질 때도. 엄마의 단골 잔소리는 사건 발생 후 3초 후 어김없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는 진짜 잘하는 일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왜 엄마는 나한테 칭찬을 하지 않는 건지 물었다. “너는 원래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잖아. 엄마가 무뚝뚝해서 표현을 잘 못 해.”


무뚝뚝에 완전히 적응해서일까? 엄마의 무뚝뚝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일까? 이제는 다정한 말들이 낯설었다.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다는 김경미 시인의 말처럼, 작은 다정은 나에게만 큰 착각으로 다가왔다. 미팅이 끝나고 남은 간식을 손에 몰래 쥐어줬던 거래처 피디님이 그랬고, 가방이 무거워 보인다고 대신 들어주겠다는 친구가 그랬다. 누가 조금만 친절해도 어색했고, 예의 삼아하는 매너 있는 행동엔 의미부여 하기 일쑤였다. 다정하고 따뜻한 것들엔 영 면역이 없었다.


최근엔 엄마랑 길을 걷다, 발을 헛디디어 발목을 접질렸다. 3초 후 엄마의 익숙한 말들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발목이 욱신거리는 통증과 동시에,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주파수를 참을 수 없었다. 길 한가운데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남도 안 그러겠다! 괜찮냐고 먼저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엄마는 다음날 병원에 가보라며, 끼니 좀 잘 챙겨 먹으라는 긴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여기저기 맞춤법은 엉망인 상태로. 따뜻한 거 비슷한 말을 할 때는 꼭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엄마다. 미안하다는 말은 죽어도 말하기 싫어하는 자존심 센 사람이 바로 엄마다. 그런 엄마를 내가 참 많이 닮았다. 친한 친구에게 보고 싶다, 고맙다, 미안하다 같은 말을 내뱉는 게 어려워 항상 편지로 끄적거리는 내 모습이. 주위 사람에게 부드러운 말보다 무심한 말투로 툭툭 말을 던 지는 내 모습이. 왜 좋은 건 안 닮고 안 좋은 것만 닮은 걸까. 이제라도 다정함에 자주 노출되면, 다정도 별것 아닌 게 되려나. 다정한 말들이 내 안에 많이 쌓이면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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