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결혼정보회사에서 견적을 내봤다고 했다
친구가 결혼정보회사 홈페이지에서 견적을 내봤다고 했다. 자신의 연봉, 키 등 정보를 입력하고 원하는 상대방의 직장, 연봉 등을 선택하면 10번의 만남을 주선해주는데, 그 비용을 그쪽 업계에서는 견적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친구의 견적은 2백만 원. 큰 금액에 놀라 감탄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너도 한번 해보라며 친구는 핸드폰을 건넸다. 장난 삼아 가볍게 시작하다가, 원하는 상대방의 직업군을 고르는 부분에서 멈칫했다.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판사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야. 내가 원하는 타입은 없는데?”“그러면 그냥 일반으로 체크해.”
누군가를 만난다면, 예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혼정보회사가 인정한 직업군은 아니었다. 결혼 시장에선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을 제외한 모든 직업을 ‘일반’으로 뭉뚱그려 놓았다. 결혼 앞에서 직업은 경제력 또는 안정성 2가지 기준으로만 평가된다는 사실이 냉정했다.
조건을 따져 서로를 등급 매기고, 만남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법이 이렇게 쉽고 노골적으로 시행되다니. 나는 결혼 시장에서 몇 등급으로 평가될지 생각하다 그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자습 시간 때, 옆자리 친구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면서 말했던 기억. “우리가 소야? 왜 우리한테 성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거냐고!” 그렇게 강제로 등급 매기기를 당했던 10년 전 우리들은, 이제는 자발적으로 결혼정보회사에 문을 두들기고 “내 등급 좀 평가해주세요”를 요청하고 있는 꼴이었다.
설사 조건에 딱 맞는 상대를 찾아 결혼에 성공할 수 있다고 쳐도, 결혼은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결혼이 여성에겐 손해 보는 장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만 비교해봐도 답은 쉽게 나온다. 여성이 제공하는 가사노동력을 바탕으로 남성은 사회에서 경쟁력을 얻지만,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경력단절로 이어진다. 결국 결혼은 남성의 경제적 우위를 굳건하게 만들며 여성의 자립성을 꺾어버린다. 잘 살기 위해 따지고 따져 선택한 결혼은 여성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기보다, 가부장제도의 모성 강한 어머니가 되길 강요한다.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 “꼭 그런 말 하는 애들이 먼저 가더라”라는 답변을 그만 듣고 싶은 요즘, 나는 결혼하기가 싫다. 비록 몇 년 전엔 ‘비혼’이라는 단어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점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듯하다. 모든 여성을 미혼과 기혼으로만 구분 지으며 왜 결혼 안 하냐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도대체 왜 결혼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