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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Feb 23. 2020

아빠는 회사에 다니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게 해 주세요

어렸을 때 내 소원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으슥한 골목길 끝에 있었다. 그 골목길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아빠는 회사에 다니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게 해 주세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누워서 TV만 보고 있는 아빠가 있었다. 엄마는 미용실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했기 때문에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와 나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다니기 바빴다.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 바둑학원. 그리고 밀려있는 구몬 학습지까지. 엄마의 유일한 쉬는 날은 매주 화요일이었는데, 나의 화요일마다 긴 골목길을 리듬에 맞춰 춤추듯 달려갔다. 매일이 화요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 시절,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이야기. 어느 크리스마스 날, 자정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아빠가 집에 늦게 돌아왔다. 거의 집에만 있던 아빠가 늦게 들어왔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자 아빠의 검은 머리 위에 하얀 눈이 다닥다닥 얹어있었다. 아빠는 알록달록한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아이스크림 케이크이었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늦게 왔다고 아빠는 투덜댔다. 우리는 잠옷 차림으로 거실에 모여 작은 분홍색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 기억은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날이 크리스마스여서 그랬을까. 우리 아빠도 다른 아빠들처럼 맛있는 걸 사 오는 자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동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날의 분위기가 내 소원 '아빠는 회사에 다니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풍겨서였을까. 아무튼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었던 게 생생히 기억난다.


두 번째는 윷놀이 이야기. 어느 설날에 우리 가족은 윷놀이를 했다. 윷놀이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내심 '우리 가족이 이런 걸 한단 말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날 우리 가족은 아주 많이 웃었다.


나와 아빠가 팀, 엄마와 오빠가 팀이 되어 대결을 했다. 그런데 엄마가 윷을 던진 후 실수로 우리 팀의 말을 옮겼다. 아빠가 말했다. "남의 말로 엉뚱하게 잡고 좋아하네" 아빠의 말을 듣고 엄마는 입을 벌릴 수 있을 만큼 크게 벌리고, 눈은 감을 수 있을 만큼 질끈 감고 웃었다. 바닥에 엎어져서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한꺼번에 웃었다. 그 순간에 행복한 느낌이 정수리까지 뾰족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렸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구나.


한 번쯤은 어린날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그때의 추억들은 모래사장에 반짝거리며 빛나는 조약돌처럼 내 마음속에 콕 박혀있다. 지금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오는 아빠도, 같이 학원에 다니던 오빠도 사라졌다. 그래서 더 기적 같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 기억들을 다시 글로 써보니 내가 왜 그 장면을 잊지 못하는지 알 것만 같다. 어렸을 때 나의 소원은 사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해 주세요.' 였다는 것을. 혼자 학원 다니는 것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빼곡히 채우고 싶었다는 것을.  


행복을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행복은 사소한 일의 빈도수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윷놀이를 더 자주 할수록, 엄마의 쉬는 날이 더 많이 있을수록, 우리 가족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더 자주 먹을수록. 정겹고 사소한 일이 빈번하게 반복되는 게 결국 행복이 아닐까. 어렸을 때 나의 소원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자주 보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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