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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Jul 26. 2020

나는 왜 엄마를 사랑하는 게 어려울까

엄마는 나를 낳고 1년 뒤에 작은 미용실을 열었다. 이름은 고운 미용실. 3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엄마는 고운미용실 원장님으로 지냈다. 작은 미용실이지만 직원 두 명을 고용할 정도로 손님이 항상 북적거렸다. 나는 슈퍼를 가도 문방구를 가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고운 미용실 딸내미 왔구나~”


엄마는 맨날 일만 했다.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도 거의 가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는 오빠의 발인이 끝난 지 일주일 되는 날, 납골당에 다녀오자마자 바로 가게로 출근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갔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날 가게에는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 일했던 태희 이모가 혼자 일하고 있었다. 엄마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주르륵 앉아있던 손님들이 동시에 대화를 멈췄다. 우리가 손님들을 지나치며 가게 한 구석으로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함께 따라왔다. 동정과 안타까움이 섞인 타인의 눈길이 등 뒤로 따끔따끔 느껴졌다.


엄마는 말없이 파마약이 묻은 검정 앞치마를 입었고, 나는 가게 한구석에 앉았다. 엄마가 바리캉을 들고 손님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엄마의 표정을 상세히 묘사해보고 싶지만, 도무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충혈된 눈과 공허한 눈동자. 꽉 다문 입술. 동시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 그때 나는 ‘우리 엄마지만 참 독하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앉아 있는 손님들을 보고 생각했다. ‘좀 다른 미용실에 가면 안 되나.’


그런 엄마가 30년 동안 지켜온 고운미용실 원장직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았다. 월세, 건물 주인과의 트러블 등 복잡한 문제 때문에 가게를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가게를 옮기기 전에 엄마는 조금 쉬고 싶다고 했다. 고운 미용실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엄마가 어색했다. ‘고운 미용실 원장님’이 아닌 ‘그냥 엄마’는 처음이라 낯설었다.  


지난주 토요일엔 엄마가 새로 오픈할 장소에 함께 가보자고 말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 근처 카페에 가서 엄마와 커피를 마셨다. 엄마와 단둘이 카페에 앉아있다는 게 어색했다.


“나는 정말 이렇게 산 거 후회해. 진작 가게 그만둘걸. 오빠 그렇게 될 때, 주변 사람들이 가게 옮기라고 했는데, 내가 계속 고집부려서 일한 거거든. 엄마는 그렇게 일해야 되는 줄 알았어. 그래야 너네 더 가르치고 더 좋은 거 사 먹이고. 그래야 되는 줄 알았어. 엄마가 미안해. 같이 시간도 좀 보내고 대화도 할걸. 왜 이렇게 일만 했는지 몰라.”


내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독백 같은 말을 줄줄 읊어댔다. 30년 넘게 일했던, 엄마의 거의 모든 것이었던, 고운미용실을 정리했기 때문에 엄마는 감정이 복잡해 보였다. 엄마의 모놀로그에 나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고 싶었다. “괜찮아, 엄마. 엄마 다 이해해. 앞으로 잘 지내면 되지.” 그렇게 말하면 우리도 꽤 괜찮은 주말 가족 드라마 같은 결말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드라마가 아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엄마 말대로 나는 ‘지 아빠 안 좋은 것만 쏙 빼닮은’ 이기적인 딸이었다.


“너 그럴 거면 니 아빠랑 가서 살아.” 아빠와 엄마가 이혼한 후, 엄마한테 혼날 때면 단번에 날아오는 아픈 말들이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담겨있다. “너 오빠는 안 그랬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죽은 오빠와 비교당하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속엔 분노와 슬픔이 휩싸였다. 오빠가 떠난 후 엄마와 나는 꼭 필요한 말만 했다. 엄마와 어떤 대화를 하는 것도 어렵고 불편했다.


엄마가 차라리 남이라면,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겠지만 엄마라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나는 엄마한테 쌓인 게 많아서 엄마가 그렇게 말해도 한 번에 잘 안 풀려.” 속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것도 잘 해결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어렵다.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엄마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이.


엄마를 떠올리면 온갖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불쌍하지만 화가 나고, 좋아하지만 미운. 이상하지만 대단한. 가족이라곤 엄마와 나 단 둘 뿐이라 더 어렵다.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내 자신도 한심하다. 몇 년 후엔 과연 내가 드라마 같은 대사를 내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튼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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