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보다 더 큰 인생

- 사라요의 인생을 지지하며

by 오아시스

"아들아, 글똥누기 가져와야지."

"왜?"

"엄마가 잘 썼나 봐야지?"

"안 보여주고 싶은데. 안 보면 안 돼?"

"아들, 엄마에게 비밀 있어? 그러니까 더 읽고 싶은데!"

난 빼앗듯이 2학년 아들의 글똥누기 공책을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 요지는 받아쓰기를 봤는데 45점을 맞았고 엄마에게 말하려니 혼날 것만 같고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도 써 있었다. 아들의 말도 안 되는 심정에 가슴도 아팠지만 45점이란 말도 안 되는 점수에 화가 솟는 것도 사실이었다.


상처보다 더 큰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상처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오늘 책을 읽다 눈에 들어온 구절이다.


어릴 때는 왜 상처를 그렇게 크게 봤을까. 자잘한 상처들이 내 인생들을 다 뒤덮도록 놔두고 있었다. 상처보다 더 큰 인생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근시안. 작은 시야.


작은 상처 때문에 큰 인생을 망칠 뻔한 사람도 수두룩하겠지?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인생을 배울까.

‘인생’이라는 단어.


인생은 너무 크고 학교에서는 국,영,수,만 가르친다. 국,영,수에서 인생을 배울 수는 없다. 또 모르지. 정말 훌륭한 스승님이 국어를, 영어를, 수학을 인생을 접목해 깊이 가르쳐주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르지. 그런데 선생님들은 시험에 나올 거라며 툭툭 핵심을 짚어 가르치고 진도를 나간다. 진도 빼기가 늘 빠듯했다. 많은 분량을 배우나 깊이 못 배우고 점수 맞기 위해서 공부하니 아름다운 시도 암기로 공부한다. 시를 한번쯤 열 번 소리내어 낭독해 본 후 느낌을 한페이지 정도 써 본다면 그 시는 내 인생 시가 될 수도 있고 시가 뭔지 조금은 느껴볼텐데, 인생의 한 자락을 맛 볼 수도 있을 텐데. 학교에서는 인생을 맛보도록 공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가 재미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할만 하구나. 1등을 할 목적에 불타오르지 않는다면 저 재미없는 공부를 해서 뭐하나 싶기도 하겠다.


아이들은 인생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갑자기 질문이 생기고 고민이 생긴다. 수학 점수 100점 맞는 거에 골몰하면 하루도 다 모자란다. 문제집을 아무리 풀어도 수학을 늘 100점 맞을 수는 없는 법. 60점도 힘들 거라는 현실. 수학 잡으려다 인생을 놓친다. 가슴 아픈 경험자의 고백이다. (흑흑. 울고 싶다.)


공부에 인생이 붙었다. 국,영,수,사,과 공부에 인생을 붙인다고 해보자. 인생은 공부 뒤가 아니라 앞이다.

인생 + 공부


어떤 단어가 이 안에 포함되어야 할까. 자연, 독서, 글쓰기, 경험, 놀기, 여행, 영화, 대화, 좋은 태도, 관심, 정성, 호기심, 우정, 넘치도록 이해받고 지지받는 일, 건강에 좋은 음식, 예체능 계열의 예술 영역의 생활화, 등등. 이런 일들을 하루라는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재미있게 배워가면 좋을까.


우리 아이들의 하루가 꿈을 빙자한 성공 공부가 아니라 성숙한 인생 공부로 이어지는 하루하루이기를 바란다. 그래, 꿈을 빙자하고 있다. 공부해야 좋은 꿈을 이루지. 의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유명한 작가도 되고 성공한 건축가도 되고… 널 위해서.


그저 창조주가 우리 아이를 이끌어가는 대로 순리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꿈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실컷 제 모습대로 누려본 다음 때가 되면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 스스로 깨닫고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 부모는 ‘실컷’ 네 자신을 누려보라고 최대한으로 '자신'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창조해 주는 역할이지 않을까.


물론 변수가 있다. 친구와 스승님, 어른, 애인 등 어떤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맞닿아 있을지는 정말 모를 변수, 인연은 너무나 중요한 변수다. 그건 창조주가 우주가 하는 일.


난 의사를 만들려고 서울대에 보내려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김칫국부터 마시는 거창한 괴담일수도ㅠ) 더 큰 인생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깊이 파고 들어 알고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 아이들의 창조된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우리 아이가 의사의 운명이 아니라면 유명세를 치를 아이가 아니라면 굳이 애를 몰고 가서 인생을 놓치도록 하고 싶지 않다.


지금 여기는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순간, 이 순간의 맛을 함께 알아가는 엄마가 되도록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