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냥 집에서 먹으면 안 돼?"
"그럼, 치킨은 사 줄 수 없어."
"알았어. 그럼 옷은 안 갈아입고 그냥 이대로 잠옷 입고 갈래."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
아이들은 후다닥 슬리퍼를 꿰 신고 차에 올라탔다.
"우리 노을 지는 거 보면서 낭만적으로 치킨을 맛있게 먹어 보자. 고고!"
어렸을 때는 매일매일 노을을 바라보며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엄마를 따라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동네에 있는 채소가게를 걸어간다. 엄마는 채소가게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나는 멍하니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붉게 물든 하늘이 아름다워서 마음을 빼앗겼다. 가장 아름다운 건 저 붉은 하늘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알지도 못하는 감정들이 부풀어 올랐다.
할아버지네 댁에 갈 때였다. 우리 식구는 택시에 좁게 구겨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시골길을 달려갔다. 내가 살던 곳도 시골이지만 친가는 더 시골이었다. 늘 저녁때쯤 갔는지 지는 해가 거대한 모습으로 가족들이 비좁게 타고 있는 택시를 따라왔었다. 하늘은 붉게 번져가면서 추격자처럼 나를 따라왔고 나는 그런 해를 쳐다보면서 할아버지댁까지 도착하고 만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걸 아는지 어느새 해는 쏘옥 들어가고 캄캄해진다.
그리고는 기억이 끊겼는지 10대에 20대에 30대에 노을을 바라봤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나이의 나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나는 나를 떠나 어디에 가 있었던 걸까. 40세가 넘고서야 다시 노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 혼자 보기 아까워 세 아이들을 데리고 저수지 앞에 갔다. 해가 뉘엿 넘어가며 해가 저수지 위에 물그림을 그려갔다. 저수지 위로 파란 하늘 위로 해의 기운이 붉게 퍼져가자 잠자리들까지도 발갛게 물든 날개를 갖고 우리들 머리 위에서 날개짓을 하며 까불고 놀았다. 초록 잔디밭, 파란 하늘, 붉은 노을, 빨간 고추 잠자리, 모든 풍경을 담고서 아른 거리는 저수지 물, 물 위로 쏟아지는 빛.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그 풍경을 온전히 누린 건 그 자리에 있는 나와 세아이들 뿐이었다. 아이들은 노을이 아름답다며 저수지쪽으로 난 벤취에 앉아 가져간 치킨을 맛있게도 먹었다. 치킨의 맛이 풍경의 정취를 더 풍요롭게 했다. 거기서 찰칵! 하고 사진 한장을 찍었다.
노을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기도 하지만 쓸쓸한 감정도 든다. 노을은 지면서 사라지면서 생겨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제 나는 쓸쓸한 감정도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40살이 넘어가니 가장 아픈 회한이라는 감정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마냥 들뜨지도 마냥 슬프지도 않아하면서 노을을 바라본다. 이제는 날마다 노을을 바라본다. 하루의 색깔이 어땠나 가늠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