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서도 마흔 살이 넘어 보이는데도 쇼핑몰 한 가운데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아들과 어머니를 보았다. 아들은 아빠의 입장에서 이쁜 딸의 신발을 그저 이쁜 디자인으로 딸이 원하는 샤방샤방 공주님 구두를 사주고 싶어했지만 함께 온 어머니의 생각은 달라보였다. 그녀는 억척스럽게 살아왔기 때문에 손녀의 신발이 실용성이 있어서 편하고 오래 신어야 한다며 구두와 다른 신발을 들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렸다. 가운데서 직원만 난처해 하며 둘의 옥신각신을 불편해 했고 이쁜 딸이자 손녀인 일곱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는 물끄러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들, 할머니와 아저씨가 되어도 여전한 둘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러다 휘슬러 화가의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그림을 보게 되었다.
평생을 둘이서 살아야 했다니 얼마나 큰 비극인지! 자유로운 아들과 엄격한 금욕주의자 엄마. 엄마는 사랑이 아닌 욕망으로 아들에게 다가가려 했고 욕망의 대상이 된 아들은 포로가 되어 돌담으로 둘러싸인 무미건조한 감방처럼 엄마의 견고한 회백색 인생 안에 담겨 있어야 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미워했을까.
회색과 검정의 조화가 아니라 아들이 본 엄마의 인생 색깔이 아닐까. 다채로운 자신의 인생깔과 다른 엄마의 인생깔은 회색 아니면 검정. 그런데도 아들은 엄마에게 끌려다니며 사랑도 끝내야 했고 엄마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와야 했고 함께 살았다. 왜 그랬을까? 아들은 심약하고 엄마는 너무도 강했을까. 강했을 것 같기도 하다. 조금도 꿈쩍도 안 하는 대쪽의 여인들이 있다. 상황이 않 좋을 때는 인생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잡고 있는 역할을 하기에 긍정적인 면이 발휘되는 성격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누군가를 억누르며 자신의 식대로 끝까지 끌고가려는 변함없는 성격.
“그래, 어머니가 그렇게 모델료가 아까워하시니, 어머니를 대신 그려드리지요.”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이런 아들은 계속 뒤치다꺼리면 계속 철없는 행동을 할 텐데. 보란 듯이, 반항하듯이, 거부하듯이 질질 따라오면서. 엄마는 한평생 이런 아들을 내 눈 앞에 두고 이래도 저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 고통을 어찌해야 했을까.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정리가 좀 될까. 한번쯤 자식을 훌훌 날려보내면 어떨까.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네 뜻을 존중하니 나를 떠나서 네가 해 보고 싶은대로 한 번 해 보는 건 어떻겠니? 대신 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하겠지? "라면서 실패하더라도 아들에게 시간을 주면 어떨까.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사람은 실패의 시간도 꼭 필요하고 고통의 시간도 꼭 필요하고 지랄발광을 하는 시간도 꼭 필요한 걸 알게 되었다. 그 시간들로만 인생이 끝장나버려도 그 사람의 탓이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보이기에 좋은 평평한 감정선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사람은 좀체 깊어지지 못 할 것 같다. 이런저런 감정의 곡선을 업하고 다운하고 평안하게 유지시켰다 오르락 내리락 해보게 되면 자신의 진짜 감정선의 리듬을 찾아내지 않을까.
음악가처럼 말이다. 음표는 한정되어 있지만 명곡들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다. 감정도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명감정선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도’에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 밋밋한 한 음만을 내는 평지의 가락이 아니라 살 맛의 이런저런 감정선들이 화음을 이루어서 듣기에 좋다는 뜻이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란 없다. 그랬다가는 곧바로 굳기 마련이다. 마음처럼 잘 굳는 흙도 없다. 창조주는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마음의 흙은 고밀도 고분자이지만 까다롭기 그지없어서 조금만 방심해도 곧바로 썩어버리거나 굳어버리는 재질을 사용하신 게 아닐까.
불확실성. 현재는 불확실성이라는데 이 말이 맞구나. 그래야 감정들이 춤추면서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가겠구나. 인생에 안정을 목표로 삼아 살아간다는 건 인간이 아니라 굳어버린 돌이 되고 싶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불확실성을 너무나 싫어했는데, 확실한 게 좋았는데, 창조주가 주신 인생의 기반은 불확실성 이구나. 오늘 아침은 그런 생각이 든다.
창조주의 손을 잡고 오늘을 걸어간다면 그건 불확실성의 세계다. 알지 못 하는 길이다. 확실한 길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 난 두려움 없이 창조주의 손을 잡고 오늘 속으로 걸어간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하면서, 어떤 감정의 가락들을 듣게 될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