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동화처럼 그래야지, 순수하게 앤을 응원하는 마음만 솟아올랐다.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앤은 결국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에 갈 기회를 갖게 되지만 아픈 마릴라 아주머니 곁에 남기 위해 길버트에게 좋은 기회를 양보하고 마을에 돌아와 학교 교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걸. 앤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음을 미리 알고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만 응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게 되니 쉽지 않은 일이다. “난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거예요.” 이런 생각도 해 보지 못 했다. 내 인생이니, 내가 주인공인 건 당연하지 않아? 그런데 당연하지 않았다. 노!노!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럼 “지금부터 주인공 하면 되잖아?”, “어떻게 할 건데?”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사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주인공이 되는 법도 각양각색, 알록달록, 아롱이다롱이일 텐데 내 방법은 뭐지? 갑자기 길이 없는 지도를 받았다. 정답지도 없는 어려운 문제가 이 아침에 불쑥 밀고 들어왔다.
머리가 아파서 커피를 한 잔 진하게 타와 한 모금 마셨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가치관 아래서 네네, 해야 했고 사춘기 때는 학교 시스템을 따라서 앞으로만 질주해야 하는 줄 알았고 결혼해서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내했고 갖고 있는 신앙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내 모습을 네모난 각진 틀에 끼워 맞추고 살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 받지도 않았다. 내 스스로 노예 감독관이 되어서 나를 노예처럼 “~해야 한다.” 라고 윽박질러 대며 주인공이 아닌 노예처럼 살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일이다. 내 마음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더라면 “내 마음은 이렇지 않은데, 내가 왜?” 라고 반기를 들었을 텐데.
순종적인 나의 기질은 노예 놀이하기에 적합한 대상이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폭정을 휘두른 어떤 사람 때문에 지긋지긋한 노예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예보다는 죽음이 낫다는 생각이 든 뒤로 탈출 노선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자 나의 노예 딱지는 떼어져 떨어졌고 “~해야 한다”라는 철퇴도 끊어 버리고 “~하고 싶다.”의 좀 더 가벼운 옷을 입게 되었다. 또 달리고 달리고 달리자 이제는 “~하고 싶다.”의 마음도 있지만 “~하면 좋겠는데?”의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놀 생각에 신이 난 것처럼 “오늘은 어떻게 재미있고 신나게 보내지?”라는 들뜬 마음으로 하늘을 보며 일어나게 되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자 새로운 세상에 도착했다. 당도했다. 또 달려야 할지 모른다. 새로운 세상에 가기 위해서는.
그렇지만 잠시 동안은 서서히 걷고 싶다. 이제부터는 느리게 주위를 둘러보며 느끼고 감탄하고 누리고 음미하며 걷는 산책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산책을 다 하면 다른 길이 나오겠지. 그 길은 또 달려야 할지, 걸어야 할지. 기어야 할지, 퐁퐁 뛰어서 가야할 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오늘 내 마음은 즐거움이 가득하다. 먹구름도 있지만 먹구름은 흰구름이 되고 흰구름은 먹구름이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알고 있기에 삶이 멋질 수 밖에 없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진리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