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제 본 영화 아니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탭을 덮었다. 큰 딸이 딴 짓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눈치도 빠르다.
"그거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거야?"
어제 보고 또 생각나서 참지 못 하고 또 보려다 난감한 순간이 생겼다.
"응, 그렇긴 한데, 뭐, 꼭 동성애로 볼 것도 없고 첫사랑쯤으로 봐도 되고 뭐, 그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되고 뭐,"
나 왜 이러니? 횡설수설이다. 아이가 있는 앞에서는 보지 말자고 탭을 바로 껐다.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를 보고 주말에는 스승님께 빌려온 영화의 원작 "그해, 여름 손님"을 읽었다. 아이들이 다 잠들고 나서도 내가 잠들지 못 하는 밤, 그래 이런 밤. 이 책을 읽기에 적격이지. 영화를 너무 몰입하며 봐서 인지 책은 영화만큼이나 와 닿지 않았다. 처음부터 몸만을 탐하는 남주가 맘에 들지 않았다. 나와는 정서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란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만나서 호감이 있으면 몸으로도 인사처럼 나누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그들 문화가 이질적이었다.
몸가짐을 바르게 해서 결혼한 뒤 남편하고만 잠자리를 해야 한다고 듣고 자란 나로서는 어떻게 몸을 저리 쉽게쉽게 내 줄 수가 있지? 아니, 내 몸을 내가 가지고 즐기는 건데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저러다 병에 걸리겠는데? 체력이 남아날까? 사람을 사람처럼 볼 수 있을까? 몸으로 나누는 사랑의 느낌은 어떨까? 라는 의문들이 떠올랐다. 요새 '몸'이라는 단어가 내게 다가왔기 때문에 '몸'에 관련된 부분들에 호기심이 많이 일고 있다.
책에서는 동성커플이라 항문에 해야 하고 책에서는 항문이 아파서 자전거를 못 타겠다는 문장도 읽었다. 끔찍했다. 사랑이 아니라 고통이지 않을까? 책에서는 행위를 하고 나서 함께 화장실에 가서 응아도 하는 장면도 있었다. 책은 고등학교 때 읽은 하이틴 로맨스처럼 뭐하나 빠질 것 없는 남주와 한 가지 매력은 있다고 설정하고 가는 여주의 로맨스처럼 뭐든지 완벽한 두 남자의 사랑을 미화해서 쓴 로맨스 책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영화는 달랐다. 오! 달랐다!
일단 색감이 너무 이쁘다. 실제 색에서 한톤 다운되면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색감이라고 해야 할까. 주황색 복숭아가 너무도 탐스럽게 열리는 과수 나무들, 이탈리아의 우아한 고대 건축들이 서 있는 한가한 광장, 언제나 수영을 할 수 있는 투명하기까지 한 아름다운 호수, 오래됐지만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감각으로 채워진 고택, 밖에서 테이블을 내어 놓고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식사하는 풍경,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오솔길, 줄무늬 티에 짧은 반바지, 까만 썬글라스, 마음 깊이 스며드는 음악, 이상적인 부모님, 정말 친밀해 보이는 스킨쉽, 한 여름의 태양, 음악처럼 리듬감 있는 들리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영어의 말소리들, 사랑에 깊이 빠진 엘리오와 목소리까지 완벽한 올리버 두 배우까지.
원작으로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낸 거지? 믿겨지지 않았다. 스승님 말처럼 영화도 시라면 로맨스를 시로 승화시켰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다면.......나의 상처도 시처럼 승화되지 않을까.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 자기 극복이라고 하면 너무 처절한 싸움처럼 느껴지지만 그 인생에 머물러 있지 말고 매몰되어 있지 말고 그 자리에서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매순간 살아있음'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지극히 인간적인 눈을 갖는 일. 그때라면 상처도 시가 되는 인생이 되려나.
상처도 시가 되고 사랑의 허기도 시가 되고 가난도 시가 되고 몸의 병도 시가 되고 실패도 시가 되고 수치도 시가 되고 콤플렉스도 시가 되고 배신도 시가 되고.
오늘은 내가 시를 한줄 쓰는 하루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몸으로 시를 쓰는 하루. 나중에 수정할 때 삭제해야 할 한 행이 될 수도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고르고 골라 생각해 내듯이 정성껏 동화를 쓰고 아이들을 대하고 수업을 하고 아름다운 은유를 위해 고심하듯이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보고 웃고 대사를 쳐 보고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지내볼까. 시의 한 줄이 쓰이도록, 몸의 시를 쓰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