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커피 마시고 싶어?"
"응!"
난 화들짝 놀란다. 둘째딸 말대로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뜸을 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커피 마시고 싶은지?"
"엄마 표정을 보고 딱 알았어. 그냥 알아졌어."
나는 놀라서 감탄의 박수를 세번쯤 쳐 주었다.
"어떤 커피? 갈색 커피? 까만 커피? 아니면 달고나 커피 해 줄까?"
"갈색 커피."
"오케이!"
딸은 금세 종이컵에 달달하고 진한 믹스 커피와 함께 에이스를 작은 접시에 담아다 주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맛있게 먹어."
입술을 쭉 내밀고 뽀뽀까지 해 주는 친절한 서비스로, 엄마에 대한 서비스는 종료가 된다.
둘째딸은 일명 감정천재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기가막히게 잘 알아챈다. 물론 자신의 감정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게 사과도 아주 잘 받아낸다. 사과를 강요하기도 한다.
"엄마, 나한테 사과해."
"왜?"
"엄마가 말을 퉁명스럽게 하고 자꾸 내게 화를 내면서 말했어. 내 마음이 상했어. 빨리 사과해."
내가 피곤했나보다. 또 말이 거칠었군. 난 또 즉시 설득당한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는 한번 포옹을 하고 딸은 입술을 쭉 내민다.
사과도 잘 받아내는 둘째딸은 사과도 잘 한다. 그리고 선물도 잘 한다.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 선물을 날마다 자잘하게 만들어 주고 써 주고 이벤트를 해 준다. 어제는 내게 편지를 건넸다. 해리포터 인장으로 봉투도 봉인해서 왕의 서찰같은 느낌이 나는 편지였다. 초에 불을 켜고 실링왁스(?)를 동그란 볼에 녹인 다음 그린핀도르 기숙사 무늬가 새겨진 동그란 스탬프를 찍고 식히면 중세시대 비밀문서처럼 봉투가 봉인된다. 난 그 봉투가 아까워서 바로 뜯고 싶지 않았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봉투를 열고 편지를 보니 편지도 아이디어 였다. 책처럼 만들어 보려고 했단다. 접힌 부분을 한 부분씩만 펴서 읽게 되어 있고 "엄마는 나의 0이야"라는 퀴즈도 있었다. 정답은 맨 끝 페이지를 펼치면 짠! 하고 등장하는데 답에 '보물'이라고 씌어 있었다.
내가 둘째딸에게 감정천재라고 말 할 수 있는 건 어른도 놀랄만한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딸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아서 큰 딸과도 재미있게 놀다가 막내 아들과도 재미있게 놀면서 중간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다. 덕분에 엄마인 나는 편하다. 둘 사이를 중재하고 달래고 따끔하게 혼내기도 한다. 혼내는 대상도 동생뿐만이 아니라 언니도 혼내고 엄마도 혼내고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도 혼낸다. 그런데 둘째딸의 말은 늘 설득력이 있어서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우리 둘째딸의 나이는 고작 10살이다.
둘째딸이 떼를 쓰면서 사과를 하라고 할 때도 있는데 순순히 사과를 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다정함’ 때문이기도 하다. 늘 누구에게나 다정해서 다정함이 둘째딸에게는 포인트처럼 쌓여 있다. 엄마인 내게는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불을 끄면 꼭 가서 잘 자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해 주고 나온다. 나도 뒤늦게 눈치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날마다 하는 밤인사다. 말투도 얼마나 다정한지 자신은 과자처럼 달달하게 말을 한다고 본인 스스로 밝힌다. 까칠한 큰 딸을 칭찬해 주는 일도 둘째딸 몫이다. 고집스런 막내를 데리고 재미있게 노는 일도 둘째딸 몫이다. 태권도 학원에서 남동생이 형아들과 어울려 못된 짓을 할까봐 눈을 치켜 뜨고 감시하는 몫도 둘째딸 차지다. 둘째딸은 남동생이 잘 자라야 하니까 남동생이 혹시 비행소년의 낌새를 보이면 빨리 알아채야 한다고 남동생과 같은 고등학교로 가기 위해 남녀공학을 가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우리 둘째딸 마음은 도대체 몇 살인건지?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 늘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아이, 다정하고 사람들에게 선물 주기를 좋아하고 사과도 잘 하고 사과도 잘 받아내는 아이, 지혜롭게 말해서 늘 설득시키는 아이, 외모는 이만하면 괜찮은 거라고 자신을 인정할 줄도 아는 아이, 춤 추는 걸 좋아하는 아이, 다른 사람의 기쁨에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아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같이 슬퍼할 줄 아는 아이, 날마다 무언가를 새롭게 손으로 만들어보는 아이, 화분에 물을 주는 아이, 날마다 열대어에게 밥을 주는 아이,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아이. 더 쓸 말이 많지만….
이런 딸이 내 딸이라니! 원더풀, 원더풀이야!
둘째를 키우는 즐거움이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다. 한번 둘째를 키워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