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폰 케이스 이쁜 걸로 바꾸면 안 돼?"
"왜? 투명해서 좋은데."
난 투명한 케이스 안에 내 맘에 쏙 드는 명함 크기의 내 사진을 넣고 다녔다.
"누가 엄마처럼 자기 사진을 넣고 다녀?"
"뭐, 어때서?"
그래, 뭐 그렇담 이번에 나도 폰 케이스를 이쁜 걸로 바꾸어볼까, 하고 인터넷 쇼핑을 검색했다. 명화 폰 케이스에 고흐의 작품들이 여러개 진열되어 있었다.
"그래, 결정했어. 이번 가을에는 폰 케이스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해야겠어."
아이들도 다 동의하고 폰 케이스가 오도록 내내 기다렸다.
고흐가 특별해진 계기가 있었다. 그림도 모르는 내가 전시회에 갔다가 고흐가 그린 초록색 밀밭 그림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던 적이 있었다. 왜 눈물이 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고흐는 내게 특별한 화가가 되었다.
우연히 고흐가 그린 피에타라는 그림을 보았다. 고흐가 마리아 같은 존재를 간절히 바라던 시기에 그려진 걸까. 자신을 온몸으로 막아줄 존재, 세상의 광풍은 자신을 쓰러뜨리고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데 고흐는 헤어나올 방법이 없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처럼 따뜻한 품에 안겨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세상의 광풍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존재, 외면의 찬바람에 기꺼이 맞서서 옷자락을 휘날려 줄 수 있는 존재, 이해와 사랑의 옷자락으로 자신을 덮어줄 수 있는 존재. 그 존재를 기다리고 기다렸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통이 전해져 온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고흐 곁에서 옷자락이 되어 줄 수 있어서.
이탈리아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방문객 중 한명이 조각상을 만지고 파손하려다가 걸린 후로 유리막으로 작품을 가려둔 채 전시했지만 지금까지도 어떻게 하얀 빛깔을 유지하며 아름다운 선을 조각해서 넣었는지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 속 마리아는 청순한 소녀처럼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예수님의 몸은 작고 왜소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특별했던 점은 마리아의 풍성한 옷차림. 입고 있던 치마와 망토(?)가 너무도 풍성해서 예수님이 폭신한 옷의 품으로 아픈 몸을 뉘였으니 덜 아팠으리라는 안도였다.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나서 마리아의 품에 안겼을 때, 물론 육신은 죽었지만,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을까. 그런 느낌에 또 조각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상을 살만하게 하는 건 누군가의 너그러운 마음, 자비의 마음이다. 그 마음 안에서 온갖 씨앗들이 발아한다. 너그러운 품에서 잠시 쉬다 씨앗이 발아하면 민들레 홀씨처럼 꽃피울 자리를 찾아 떠나간다. 창조주는 누구나 씨앗을 발아시켜 줄 너그러운 인연을 곁에 두신다. 나도 그 너그러운 품을 만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씨앗을 발아시켜야만 하는 섭리 아래 있는 것이다. 고흐에게 테오가, 내게 스승님이, 예수님에게 마리아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그러운 엄마로의 내가. 서로가 서로에게.
내 주위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씨앗은 뭘까 고민하는 중이다. 내게 책방의 씨앗도 생겼다. 우리의 마당에 허름하고 낡은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한 공간은 책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책도 팔고 누구나 와서 쉬면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을 때 와서 수다를 떠는 방이었으면 좋겠고 글 쓰고 싶은 사람이 와서 글도 편안하게 쓰고 가는 공간이면 좋겠고 독립 출판도 할 수 있는 수준의 공간이면 좋겠고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배우면서 서로의 꿈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공간도 되는 그런 좋은 공간의 주인장이 되고 싶은 씨앗. 또 엄마, 아빠의 특기를 살려 인터넷 판매로 수익을 도와줄 수 있는 아이디어의 씨앗들을 발아시키는 중이다. 주위의 언니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너그러운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씨앗은 어디만큼 확장될 수 있을까, 시간이 더 필요한 질문이다. 날마다의 친절은 수많은 씨앗을 던지는 행위라고 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이 늘 설교하실 때 기독교인은 친절하시라고 웃으시라고 끄떡없이 까짓것! 하고 버티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오늘은 어떤 친절을 베풀까, 어떤 씨앗들을 틔우게 될까 생각하니 흥미진진해지는 하루가 될 것 같다.
너그러운 마음의 씨앗?이 너그러운 마음의 씨앗으로 발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