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이 마음문을 '끼익'하고 열어 젖힌 날

by 오아시스

"질문 있으신 분은 질문하세요."

학교 교감 선생님이 물으셨다.

한 학부형이 일어섰다.

"저 이 학교에 들어오려면 선행학습을 어디까지 하고 와야 하나요? 고등학교 2학년 정도까지 해야 하나요?"

헐, 중학교 입학 설명회인데 고등학교까지 선행학습이란 말이 나오다니.

'우리 딸은 수학 문제집 한 권도 제대로 풀어본 적이 없는데.'



너와 나만으로 충분하다. 아이들과 있을 때 난 정말 충분하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웃고 있으면 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울고 화내고 있어도 충분하다. 세명의 빛나는 존재가 내 곁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00 중학교 입학 설명회에 다녀왔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경쟁률이 7:1. 작년에 코로나로 여파가 있어서 가장 적은 3:1의 경쟁률이었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다 몰려왔다. 물론 광주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제주도만 빼고 강원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00 중학교로 찾아왔다. 학교 커리큘럼을 들으니 큰 딸이 이 학교에서 꼭 중학교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아이들이 통통 튀었다. 뛰는 심장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큰 딸이 합격한다면 떠~나~간~다. 기숙사 생활이니. 합격하지 못 하면 합격하지 못 하는 편이 더 좋은 일이라 그런 거라며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자꾸 욕심이 났다.


큰 딸이 떠나간다면? 아이들 둘만 남는다. 두 아이들도 떠나겠지? 부모님도 연로하시니 언젠가는 떠나시겠지? 나 혼자 잠드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럼 난 충분할까. 나만으로도 충분할까. 혼자가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딱 한번 해 봤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울 적이었다. 피아노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시계를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날들이 있었다. 난 소나티네를 좋아했는데 곡을 치면서 곡이 참 아름다워서, 내 손끝에서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온다니, 피아노에 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빠의 꾸지람으로 그 시절도 끝나고 말았다. 이유는 늦게 온다는 이유 하나였다. 그 뒤로는 무얼 해도 시간이 취해서 간다는 느낌은 가져보지 못했다. 나를 잊고 몰두해 본 경험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악기를 배웠으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지금도 늘 악기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있다.


아, 생각났다. 책을 읽으면서 몽땅 다 잊은 경험. 넉달전쯤 읽은 존 버거의 ‘A가 X에게’를 읽으며 황홀경에 빠졌었다. 이런 섬세하고 따뜻한 글을 쓰다니. 분위기에 취해 5시간을 내리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밤의 아이들’을 읽으며 내 무거운 마음문이 끼익 열리며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 지 비로소 알게 됐다. 내 안의 천개의 눈이 있다면 천개의 눈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책. 소설 안에 인물들의 삶을 읽으며 눈이 하나씩 떠지고 있다. 나를 발견하기 위해 나를 체험하기 위해 책을 읽는거구나! 이제야 비로소 책 읽기의 재미도 조금 맛 본다.


가장 바라던 일, 난 알고 있다. 내가 글쓰기의 맛을 알게 된다면 정말 “이제 정말 충분해!”라고 내 존재에게 말하리라는 것을. 글 쓰는 맛도 알고 싶다. 꾸준히 써서. 글눈이 떠지기를 바라고 있다. 글 쓰는 맛은 어떤 맛일까. 정말 궁금해. 오늘밤은 이런 궁금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내 존재에 좋은 질문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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