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사람들은 한가로워 보였다. 나만 빼고는 아무도 그 트럭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거리는 평화로웠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 손을 잡고 부랴부랴 건너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일 구석 자리까지 간 다음 식탁 밑으로 숨었다. 바로 그때다.
"탕탕탕탕!"
총소리,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소리,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 식당 안도 아비규환이었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긴 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군홧발 소리.
난 식탁 밑에서 아이들 셋을 꼭 품고 입을 막았다. 기관총을 갈기면서 사람들은 피 흘려 죽고 소리도 죽었다. 소리를 낼 만한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상태다.
"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저벅"
총을 든 군인이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생존자를 찾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는 살인자가 나와 아이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내 심장은 요동치다 못해 찢어질 지경이다. 내 눈 앞에서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을까봐 제정신이 아니다. 아이들도 겁에 질려 눈만 동그랗게 뜨고 침도 제대로 못 삼키고 나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조그마한 소리라도 내면 우리는 전부 죽은 목숨들이다.
군인 장화가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지 움직이지 않다가 마침내 돌아섰다.
"저벅저벅."
돌아서 입구로 나가는 소리. 우리 네 명의 눈은 허공에서 무수히도 부딪치며 '조용히 하자, 소리내지 말자, 좀 만 더 참아내자' 라며 서로를 꼭 붙들었다.
그런데 아이들 중 한명이 성급하게 마음을 놓아버렸는지 발을 뻗다 식탁 다리를 살짝 건드렸다. 식탁이 조금 밀리면서 나는 날선 소음이 식당 안에 울려퍼졌다. 군화를 신은 군인은 다시 돌아섰고 나와 아이들이 벌벌 떨고 있는 식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난 그 순간 슬픔에 질식해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늘 꾸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기절을 하니 현실의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런데 그와 결별 후 나는 다른 꿈을 꾼다.
"잘 가."
"그래, 너도 잘 가."
나도 너도 서로 쿨하게 한참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나는 내 길로, 너는 너의 길로.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이루어진 깨끗한 이별의 장면이었다.
최근에 꾼 꿈이다.
내가 변했구나. 그래서 꿈도 변했구나. 사람이 변하면 꿈도 변하는구나.
이 세상을 전시체제로 받아들였던 내가 탈탈 다 털어냈구나. 너가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냈구나.
내 무의식의 지형이 변했구나. 뭐랄까. 무의식의 영토도 이사를 할 수 있구나. 음지의 습하고 축축하고 어둑한 지형에서 따사롭고 밝고 보송보송한 지형으로 이사를 갔구나. 이사 갔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내 무의식은 리모델링 중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내 고집으로 묶어 둔 인습과 전통, 관습, 종교적 신념으로 얼기설기 묶여있다 싹둑싹둑 잘라내더니 껍질이 뜯겨나가고 새로운 햇살같은 생각들이 스며들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럼 당연히 의식의 세계는 달라지겠지? 무의식이 깡그리 바뀌려고 리모델링 중이니 의식의 나무도 변하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겠지?
이렇게 생각해 보니 무의식을 바꾸어 가는 과정도 흥미로운 것 같다. 일평생 한명을 사랑해야 하는 사랑관도 바꾸고 작가에 관련된 무의식도 바꾸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거기까지는 못 해'라고 한계를 짓는 지점이 분명 있다. 그런데 그 무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보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억지스럽지 않게 넘어간다면) 작품활동과 작가로서의 커리어도 달라지지 않을까.
고집스럽게 안으로 파고들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단면들을 밝혀내는 일도, 등불을 환히 밝히고 마음 속을 훑어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의식의 나무는 자연스레 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