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나여서 좋고 엄마여서 좋다

by 오아시스

"엄마, 우리반 00는 나중에 키가 170cm 넘게 자란대. 그 애 아빠 키는 183cm고 엄마는 171cm래."

둘째 딸이 말한 친구는 반에서도 독보적인 1등을 하는 여자 아이였다. 공부방을 다니면서 하루에 30장이 넘도록 문제집을 푼다고 했다.

"00는 근데 몸무게가 27kg이야. 키가 130cm도 넘는데. 00이는 다리가 엄청 가늘어. 좋겠지?"

그런데 내 입에서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얼굴은 이뻐?"

공부도 잘 하는 애가 키도 크고 날씬한데 얼굴까지 이쁘기까지 하면 반칙같을 것 같아 한 소리였다.

"얼굴은 글쎄. 그래도 괜찮아. 이쁜 편이야."

아주 미인은 또 아니군. 친구니까 좋게 말 해주는 어감을 감안하면 보통이군.

"난 이정도면 괜찮은 얼굴이라고 생각해. 내 얼굴에 만족해."

거울을 보던 둘째딸의 말에 나는 곧장 반응한다.

"넌 진짜 이쁜 얼굴이야. 너처럼 이쁜 애를 나는 한명도 못 봤어."

"그런데 난 키가 작잖아."

둘째딸은 입이 짧아서 먹는 음식도 먹는 양도 한 주먹감이나 된다. 그러니 반에서 두번째로 제일 작지.

"키는 나중에 크는 애들이 훨씬 크게 자라니까 걱정하지 마. 지금 커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난 확실히 모두의 엄마는 못 되고 세명의 아이 엄마만 된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다는 남자 작가의 단편집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뜨악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작가는 여자는 기본적으로 팔다리가 길어야 매력적이고 나이가 들어도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매끈한 다리뿐이고 여자의 마음 같은 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남자구나. 나는 팔다리가 짧은데 심지어 굵기까지 한데 이런 남자류에게 나는 여자도 아니어서 늙어서는 거들떠볼 가치도 없는 사람이 되는거구나. 내가 왜 이런 남자 작가의 책을 읽고 있지? 내가 왜 남자 작가가 원하는 여성상이 되지 못해 속상해 하지? 빌어먹을!


남자 작가의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여성 작가의 책을 읽으리라 마음 먹었다. 아무 생각없이 남성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었고 남성이 주입한 여성상의 세계관에 길들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지들이 원하는대로 여자를 주물럭주물럭 하겠다는 거지? 흥이다, 흥!

유독 얼굴만 밝히는 남자들이 꽤 있다. 한편 이해도 간다.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라면 뛰어난 외모가 여성을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일 수도 있지. 후세를 생각하면 아주 강력한 유전인자를 물려줄 테니까. 외모는 어찌 할 수 없는 미묘한 재능이기에 외모가 여성의 등급을 좌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는 한편으로 공감이 간다. 그 남자가 그 남자라 돈 많은 놈이 좋다면 그 여자가 그 여자라면 이쁜 여자가 제일이다라는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그래도 참 불쾌한 생각이다. 미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을 수양하며 가는 인생길이어서 그런지 마음을 보지 않는다면 나란 존재는, 인간의 존재감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지?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됐다. 미인만을 여성으로 보는 남자들이 성격이 아주 괴팍한 여성을 만나서 인생 험한 꼴을 당한다. 맞추느라 허덕이며 노년까지 그럭저럭 미인과 산다는 자부심으로 나름 잘 살아왔는데 그 미모로 다른 남성에게 뛰쳐나가는 험악한 꼴을 또 당한다. 싸다. 싸. 이렇게 생각하면 좀 후련해져요?(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 내가 못 됐나 보다.


그러지 말자. 연애는 연애하는 당사자들에게 맡겨 두자. 케이스마다 다 다르겠지. 사랑의 환상이다, 그야말로.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를 참아내야 한다. 오랜 시간이 문제다. 짧은 시간의 연애는 아름다울 수 있으나 긴 결혼의 사랑은 너무 긴 시간에 늘어지고 말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수십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만나야 하지 않을까. 운이 좋다면 몇 번의 연애 끝에 만날 수도 있겠지. 왜 모든 일은 실수를 하면 할수록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연애는 왜 딱 한 번 해보고 사랑이라고 성급하게 결정지어 버렸을까. 사랑도 여러번 해 볼 걸. 몸을 더럽힌다고 생각했는데 몸 좀 즐기라고 놔둘 걸. 몸도 느껴보라고 할 걸. 마음만 느끼지 말고.


이런 깨달음을 45살에 깨닫다니. 올해 깨닫는 게 참 많다. 인생을 내가 몰랐다. 그런데 지금 45살이 참 좋다. 여자도 아니고 부인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나여서 참 좋다. 엄마라는 역할도 참 근사하다. 난 나여서 좋고 엄마여서 좋다.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사랑을 배우게 하고 깊은 나도 만나게 해 주었다. 아이 낳은 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한 일이다. 미인으로 태어나지 못 했지만 엄마로 태어나서 참 좋다.


우리 큰딸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니 참 예쁘다.

우리 둘째딸은 다정다감하고 사람을 위할 줄 알아서 참 예쁘다.

지금처럼 자신의 모습대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잘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