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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Oct 19. 2021

모닝페이지

나를 자꾸 모험하게 만드는 아침 일기

"엄마는 왜 아침에 일기를 써?"

"아침에 쓰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알았거든."

"일기는 저녁에 쓰는 거 아니야?"

"아니, 엄마가 써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어. 일기는 아침에 쓰라고 말이지."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모닝페이지를 써야지 하고 결심하고 나서 매일매일 쓴다. 머리맡에 놓아두고 일어나면 노트 스프링에 볼펜도 끼워뒀기 때문에 소형 스탠드만 밝히고 끄적끄적 써 내려간다.


내 마음의 휴지통을 모닝페이지에 탈탈 털어넣을 때도 있고 쓰는 도중 여행을 가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용기를 불쑥 내서 일단 예약부터 저질러버리기도 했다. 일년간 내가 어디 좀 다녀왔다 싶으면 100% 모닝페이지를 쓰다 생각이 나서 마음 변하기 전에 예약부터 해 버린 덕분이다. 오후에는 이리저리 잰다. 경제적인 비용이 괜찮을까? 시간 일정이 괜찮을까? 장거리 운전이 괜찮을까? 괜찮을까? 하다 그냥 지나가버리면 그 여행은 놓치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모닝 페이지 덕분에 내게 다가온 생각들을 거의 다 잡아서 여기저기 아이들과 여행을 다녔다. 일단 예약을 하면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예약과 동시에 확정 90%다.


어제도 모닝페이지를 쓰다 문득 떠올랐다. 10월 29일과 30일에 1박 2일로 남원 여행을 계획해 놓고 있다. 숙소는 물론 두달전쯤 불현 듯 생각나 예약을 했다. 남원예촌은 남원에서 제일 좋은 한옥 숙소라 예약이 늘 꽉 차 있는 곳이다. 그날은 갑자기 큰 딸이 중학교를 합격하든 떨어지든, 합격기념, 위로를 받아서 기분 전환을 하든, 여행으로 마음을 채워보자며 예약부터 걸어놨는데 벌써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틀 전에 취소하면 100% 환불이라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어제 모닝페이지를 쓰다 또 불현 듯 생각났다. 남원에서 합천이 1시간 거리네? 가깝잖아? 전주 가는 거리네? 합천에 황매산 갈대를 교희 언니가 소개해 줘서 꼭 보고 싶은데, 산 능선으로 넓게 퍼져 있는 갈대밭을 보고 싶은데 거기까지 가 볼까? 하룻밤 또 자 볼까? 합천에서? 황매산은 차를 타고 올라가 10분 정도만 걸으면 능선에 펼쳐진 갈대를 볼 수 있어서 아이들과 가도 등산의 부담이 없는 곳이라는 팁도 들어서 알고 있는데. 숙소랑 캠핑을 일단 다 뒤져 보았더니 예약이 가득 차 있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모텔같은 허접한 곳에서는 자고 싶지도 않다. 황매산 갈대가 너무도 유명해서 가을이면 난리가 날 만도 했다. 단풍도 들고 얼마나 아름답겠나? 10월의 마지막 날인데 오죽하겠느냐고!!!


작년 교희 언니와 10월 마지막 날 1박2일로 이병률 시인을 만나고 괴산에 가서 산막이옛골을 경험하고 충청도를 돌아나오는데, 가는 곳마다 창조주의 번뜩이는 가을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을 여행이구나. 가을에는 다시 충청도를 와야지 했는데 올 가을에는 우주가 아이들과 함께 예정에 없던 경상도로 가을 여행을 부르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숙소가 도와주지 않았다.


내 마음에 일어났다는 건 실현가능한 계획이라고 창조주가 말해주는 건데 아쉽다...방법이 없나? 라고만 하다 아침이 훤히 밝았다. 큰 딸이 부스스 일어났다. 내가 검색하는 모습을 보고 묻더니 자신이 컴을 켜고 곧바로 괜찮은 캠핑장에 숙소 하나를 발견해서 내게 알렸다. 아이들이 자고 싶어했던 카라반이었다. 황매산에서 20분 거리, ok! 일단 예약부터 걸자. 10일 전에 취소하면 100% 환불이 되니까 차차 생각해야지. 그래서 난 또 모닝페이지 덕분에 일을 저질렀다.


운전해서 경상도까지 가 보다니, 이게 실화인가? 상상인가? 내게는 그런 일이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하고 나면 난 경상도의 장거리 장벽을 넘어가는 일이라 내 운전 인생에도 큰 이정표를 남기는 대형 사건이 될 터였다. 내게 운전의 장벽은 3.8선 보다 더 견고해 보인다. 그래서 마음에 부담이 있다.

 

내가 가장 멀리 운전하고 가본 곳은 구례, 그때도 구례 예약을 걸어놓고 다른 무엇도 아닌 운전 때문에 마음이 심히 무거웠었다. 가는 날 오는 날까지. 그런데 다녀오니 별일 아니었다. 차도 생각보다 없었고 적정 속도를 지켜가니 할 만했다. 내가 괜시리 겁을 집어 먹었다고 다녀와서 후회도 했었다. 겁이 빼앗아가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겁이 많은 사람은 그래서 늘 힘들다. 난 이해가 된다. 구례를 찍었다고 이번에는 그때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모르는 길을 가는 거니 겁이라고 하기보다는 설렘과 살짝의 긴장이라고 해야지 하고 나를 다독인다.


상상이 된다. 남원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한가하게 가을을 느끼고 황매산에 가서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그곳은 별빛이 정말 쏟아진다고 한다.) 아이들과 캠핑장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일없이 캠핑의자에 앉아 멍도 때리고 바비큐도 신청해서 구워먹고 능선자락의 갈대 사이를 걸으며 드넓은 가을산도 함께 담고 싶고 영화세트장에 가서 구경도 실컷 하다 최단 거리로 조심히 와야지, 하고 상상만 해도 기쁨이 차 오른다.

 

모닝페이지는 나를 확장시키는 시간, 공간이다. 자꾸 나를 모험하게 하고 용기를 줘서 안 해 본 일을 시도하게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깜짝 놀래키는 친구이기도 하다. 누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안 갈 것 같던 내가 이번에는 저 멀리 더 멀리 가자고 내게 속삭이고 나는 그 말에 따른다. 모닝페이지를 쓴 뒤로는 내게 걸어오는 새로운 생각이나 말을 거절하면 나에 대한 가능성을 내 스스로 놓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은 있어도 하려고 한다. 그래야 자꾸 우주는 내게 좋을 걸 속삭여 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발견하는 모닝페이지, 창조주가 내게 주파수를 맞추고 내가 갈 길을 불러주는 모닝페이지, 나는 또 어떤 내 모습을 발견해 나가게 될까, 정말 기대가 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모닝페이지를 써 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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