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메리 올리버

경이로운 눈을 떠 보자구요

by 오아시스

상상을 해 봐요. 당신은 일어나서 여느때처럼 하얀 레이스 무늬를 뜨개질하는 성실한 바다로 산책을 나가겠지요. 당신이 산다는 곳은 프로빈스타운. 예술가들이 모여 살 만큼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라 짐작만 해 보네요. 무성한 숲, 모래 언덕, 푸른 바다. 당신이 산책을 나가며서 보게 되는 동물들, 나무들, 바다 생물들, 꽃잎들, 하늘 구름 등 당신이 보는 모든 것들은 시의 재료가 되는군요. 읽는 내내 잠자려고 엎드리는 '경이'라는 단어를 새차게 흔들어 깨우더니 기어코 일으키고야 맙니다.


사적 영역, 하루하루 일상의 사소한 일들....그것들은 표면적인 활동들이다. 파도가 일었다가 부서지는 것과도 같다. 시는 바다의 그 부분에서 나오지 않고, 어둡고 무거우며 경이롭고 거의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서 나온다. 바로 그곳에서 시가 솟아나고 형태를 갖춘다. 그곳은 시가 중요성을 갖는 곳, 시가 읽히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정신에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의식이나, 위기, 나아감, 초월의 순간들에, 공포의 순간들과 환희의 순간들에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삶에 대한 이해를 얻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해를 늘 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말기교를 화려하게 부릴줄 아는 멋진 사람이 시인이 아니었네요. 시인은 삶에 대해 감탄하고 찬미할 수 있는 사람,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고 당신이 알려주는 군요. 늘 궁금해 했던 것 같아요. 삶이 찬미의 대상이 되다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 거지? 교회에서는 삶이 광야라고, 고통이라고 이를 넘어가야 한다고 내내 들어왔거든요. 시인들이 괜히 겉멋을 부려보는 게 아닐까. 시를 이해하기 어려워서 잘 읽지 않는 나이지만 당신의 시를 읽다보면 저절로 내가 보는 모든 사물과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요. 자꾸 지나치던 걸 눈여겨 보게 되지요.


어제도 동네 산책을 나갔어요. 주말이니 좀 걸으며 몸 좀 풀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당신의 책을 읽고나서인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겨울 초입인데 여전히 노랗게 빛을 발하며 피어있는 시골 대문 앞의 소담스런 국화 무더기, 추수를 끝낸 논길을 걸어가는데 길가에 노랗게 피어있는 민들레, 여느 집 밭에 앉아있다 내 발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수십마리의 까치, 강한 햇살 덕에 눈이 부셔서 꽃잎도 이파리도 다 떼어내고 하얀 줄기만이 가늘게 빛처럼 서 있던 무궁화 나무들, 오리들이 출하되었는지 꽥꽥거리는 소리도 사라진 텅빈 농장의 비닐하우스, 거무르스한 다홍색을 띠는 못생긴 꾸지뽕 열매, 봄도 아닌데 어쩌려고 놀러다니는지 철부지 노란 나비, 담쟁이들이 말라 사그러져가는 낡은 돌담. 동네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면서 동네의 가장 연장자인 나무님까지. 제 눈도 시인처럼 기웃기웃 건너다 보며 하나하나 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삶은 나이아가라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풀잎 한 줄기의 지배자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매가 될 것이다. 나는 풀 위로 머리를 내민 백합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내 심장의 줄기로부터 즐거운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가정에 살고 있으며 한 램프에서 불타오른다. 모두가 야성적이고, 용감하고, 경이롭다. 우리는 아무도 귀엽지 않다.


당신이라면 뒷주머니에 작은 수첩을 꽂고 하나하나 적어갔겠지요? 그리고서 오후에는 홀로 앉아 뒤집고 깊이 들어가고 변용시키며 시구절을 쓰는 시간을 보내겠지요? 자신을 잊어가면서 홀로 시 쓰기에 흠뻑 빠져서 말이예요. 그 모습이 고스란히 상상이 가네요. 시를 읽지도 않은 내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큰 일이예요. 당신은 열네살부터 시 쓰기를 시작해서 지구에서 달나라만큼 원고가 쌓였을거라고 말했던 구절이 떠올라요. 그 많은 고독과 훈련, 상상, 집필, 고치기의 시간이 엄두가 나지 않는데 쓰는 족족 당신처럼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벌써 착지를 해 버리고 말았네요. 이 시간의 간극, 깊은 지점에 도달하고 말아야하는 창조의 길, 살아내야 하는 지금 이 시간. 결국은 지금 이 시간으로 돌아왔군요.


지금은 비가 와요. 눈을 감아 봅니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김장을 준비하는 엄마의 불규칙한 도마질 소리, 자판을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내 안에 가득 울려요. 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네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라면 이 소리들로 어떤 시를 창조해낼까, 괜시리 생각을 이어봅니다. 난 듣고 좋다는 마음으로만 끝나지만 당신은 이 소리들을 어떻게 언어화하고 배열해서 시로 재현해낼지, 확장되고 깊은 세계를 어떻게 경험시켜줄 지 기대하면서 말이죠. 손은 여전히 게으름뱅이인데 마음은 당신의 시 제자가 된 것 같네요. 마침, 예약을 걸어놨던 당신의 '기러기' 시집을 발송했다는 알림 문자가 도착했어요. 내일이면 당신이 평생을 사랑하며 만들어갔던 당신이란 존재, 당신이 원하던 걸 하며 살기위해 당신이 걸어간 오솔길을 밟아볼 수 있겠군요. 우리 내일 만나요.


이제 나의 늙은 개는 죽었고 나는 다른 개를 갖게 되었으며, 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의 첫 세계인 그 옛집은 팔렸고, 내가 거기서 모은 책들도 팔렸거나 사라졌다. 하지만 더 많은 책을 사들였고, 다른 곳에서 판자 하나하나 돌 하나하나로 마치 집처럼 진정한 삶을 지었다. 그 모든 건 내가 여우와 시, 빈 종이 그리고 내 에너지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빛나는 세상의 어깨들은 개인의 운명에는 무심하게 으쓱하지만 나일강과 아마존강은 계속 흐르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